[배수경의 세계로]日디플레 해법, 역사는 안다

입력 2012-03-28 09:51수정 2012-03-29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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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수경 국제경제부 차장

일본 경제가 15년째 디플레이션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근래들어 전례 없는 장기전이어서 그런지 참고할만한 해법이나 대안도 찾지 못하고 있다.

중앙은행은 유동성 폭탄도 모자라 지난달에는 1%라는 물가 상승 목표치까지 정했다. 물가가 1% 오를 때까지 자금을 풀겠다는 의도에서다.

그러나 수요가 살아나지 않는 상황에서 유동성 공급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일 뿐이다.

답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답은 바로 역사에 있다.

120년 전 일본만큼 긴 디플레이션에 시달린 나라가 있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영국이다.

영국은 다방면에서 일본과 닮았다. 두 나라는 섬나라이고 내각제다. 과거 수많은 나라를 식민지화해 경제대국의 발판으로 삼았다.

결정적으로 둘 다 장기 불황을 겪었다. 영국은 1873년부터 1896년까지 4반세기에 걸쳐 ‘영국대불황’이라는 장기 불황을 경험했다.

그 전까지 영국은 산업혁명의 종주국으로서 황금기를 누렸다. 몰락의 길로 빠진 계기는 다름아닌 산업혁명때문이었다.

산업화로 인한 과잉 생산으로 수급 균형이 깨졌다. 공산품 가격은 크게 떨어졌고 이는 산업계에 불황을 야기했다.

당시는 미국 대륙횡단열차가 생기고 수에즈 운하가 개통되는 등 글로벌화가 진행되던 시기였다. 이는 해외에서 값싼 농산물을 대량으로 유입시키는 결과로 이어져 영국의 농업에 큰 타격을 입혔다.

여기다 각 식민지에서 독립 운동이 거세지면서 식민정책이 삐걱거렸고 프랑스 독일 미국 등 새로운 강대국이 부상하면서 국제사회에서의 입지도 좁아졌다.

이 결과 경제는 침체되고 물가는 하락 일로였다.

이처럼 영국의 암울한 과거는 최근 일본의 불행과 궤를 같이 한다. 일본은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규모에서 세계 2위 자리를 중국에 내주는 등 아시아 신흥국들의 대두에 맥을 못 추고 있다.

장기 불황의 후유증으로 소비는 침체됐다. 산업계는 소비 심리를 자극하기 위해 앞다퉈 제품 가격을 낮추고 있다.

이것이 디플레이션을 부추기는 요인이다.

중요한 것은 영국은 대불황과 디플레이션을 극복했다는 것이다.

영국이 선택한 처방전은 당시 금본위제 하에서 금 수급을 완화해 금리를 낮춘 것이었다. 다시 말하면 금융완화 정책으로 통화 가치를 낮추는 효과를 내 수출을 촉진시킨 것이었다.

이를 통해 영국은 국제 경쟁력을 회복하고 오늘날 세계적인 금융 허브로 거듭날 수 있었다.

지금의 일본도 중앙은행의 금융완화 정책과 해외 경기 개선이 맞물리면서 오랫동안 경제를 괴롭히던 엔고가 꺾였다.

남은 과제는 얼어붙은 소비 심리를 녹이는 것이다.

영국도 대불황 당시 서민들의 소득이 줄면서 소비 의욕이 꺾였다. 금융완화가 제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소득 환경이 개선되면서 소비도 점차 회복됐기 때문이다.

일본은행이 금융완화를 한층 확대하면 디플레이션 탈출도 꿈은 아니라는 것이다.

다만 디플레이션에서 탈출하더라도 일본은 과거의 영화를 기대해선 안된다. 영국도 국제금융 허브로 거듭났지만 패권은 되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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