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피다 파국…암울한 日 미래 보인다

입력 2012-02-28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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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첨단산업 미래 불투명·정부 재정난으로 대마불사 신화도 깨져

일본의 유일한 D램 제조업체였던 엘피다메모리가 무너지면서 일본이 비통에 빠졌다.

일본 첨단산업의 미래가 어둡다는 우려와 정부의 재정난으로 더 이상 ‘대마불사’ 신화는 없다는 사실이 입증됐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 비운의 엘피다는 = 엘피다는 1999년 NEC와 히타치가 D램 부문을 분사·통합해 설립됐다.

엘피다라는 회사명은 그리스 신화의 ‘희망’을 뜻하는 ‘에르피스’와 ‘D(다이나믹)’ ‘A(어소시에이션)’를 합해 지어졌다.

D램 시장은 당초 미국이 지배했지만 1980년대에는 양과 저가를 앞세운 일본 기업들이 석권했다.

잘나가던 일본 반도체 업계도 2008년 본격화한 글로벌 금융위기의 충격을 피하지는 못했다.

엘피다는 자구책으로 스마트폰용 D램 칩에 집중해 고부가가치 시장으로 방향을 틀었다.

마진이 낮은 PC용 제품 생산은 대만 자회사로 옮겼다.

하지만 일본 경제 전반을 짓누르는 엔고는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엘피다는 자금난에 시달리다 2009년 산업활력재생특별조치법에 근거해 정부 산하 일본정책투자은행에서 400억엔, 민간 금융기관에서 1000억엔의 자금을 지원받았다.

오는 4월2일 920억엔(약 1조3194억원)의 채무 만기가 도래하지만 경제산업성과 주거래은행 등 채권단과의 협상이 불발되면서 생존 가능성은 ‘제로’가 됐다.

미국 반도체 업체인 마이크론테크놀로지와 대만 난야와의 자본·업무 제휴를 모색했지만 이것도 녹록지 않았다.

결국 엘피다는 27일(현지시간) 도쿄지방법원에 파산보호 신청에 해당하는 법정관리 절차에 들어갔다.

부채 4800억엔. 일본 제조업체 파산 규모로는 역대 최대다.

전문가들은 엘피다의 파국에 대해 한국과 대만 기업들의 부상으로 시장의 판도가 얼마나 극적으로 변했는지를 보여주는 일례라고 평가하고 있다.

◇ 저무는 日 첨단산업 = 일본의 마지막 D램 제조업체인 엘피다의 몰락은 일본 첨단산업의 미래가 어둡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7일 진단했다.

일본 반도체 업계는 1980년대 세계 D램 시장에서 80%의 압도적인 점유율을 차지했다.

그러나 미국과의 반도체 마찰이 커지면서 주춤하는 사이 공격적인 투자와 함께 대두된 삼성전자 등 한국 기업에 순식간에 따라잡혔다.

엘피다는 계속되는 적자로 자기자본 비율이 저하, 풍부한 자금력을 등에 업고 비용 경쟁력을 앞세운 삼성전자에 선수를 빼앗기면서 침체의 악순환에 빠졌다.

작년 3분기(7~9월) 세계 시장 점유율은 삼성이 45%, 엘피다는 겨우 12%에 불과했다.

일본 D램 업계의 최후 주자였던 엘피다의 ‘삼성 타도’ 노력은 무위로 돌아갔다.

인터넷 접속 기기의 세대 교체를 파악하지 못한 것이 결정타였다.

세계 인터넷 접속 기기 시장은 PC에서 스마트폰으로 옮겨간 지 오래지만 엘피다는 PC용에만 집중했던 것이다.

PC용 D램 수요 감소로 가격이 급락하면서 엘피다의 실적은 악화일로였다.

사카모토 유키오 사장은 27일 기자회견에서 “D램의 등불을 우리가 끄고 싶지는 않다. 회사의 앞날을 지켜볼 것”이라며 현 경영진을 중심으로 회생에 총력을 다할 뜻을 밝혔다.

◇ 日 정부 “내 코가 석자” = 재정난에 허덕이는 일본 정부에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엘피다는 반도체 가격 침체와 엔고 타격으로 곪을 대로 곪아 백약이 무효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채무 만기를 연장해주고 추가 지원을 해주더라도 엘피다가 독자 생존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판단이 앞섰을 것으로 보인다.

또 2009년 엘피다의 구제 계획에 참여했던 전 경제산업성 간부가 엘피다 주식과 관련해 내부거래한 혐의로 체포되면서 엘피다를 구제하는 데 대한 정치적인 반발도 무시할 수는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아사히생명자산운용의 나카타니 요시히로 수석 펀드매니저는 “정부로서는 판단을 내리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시장 환경이나 환율의 영향도 컸겠지만 정부가 지원을 결정했을 때는 D램 산업 자체에 대한 사업 리스크를 감수해야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엘피다의 몰락은 라이벌들에게도 환영할 만한 일은 아니다.

과잉 생산 능력과 가격 급락으로 적자에 빠진 업체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시장조사업체인 아이서플라이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난야와 윈본드일렉트로닉스 등 대만 D램 업체의 시장 점유율은 불과 3.6%, 1.6%에 머물고 있다.

엘피다는 3월28일자로 상장이 폐지되며, 채무 재편 과정을 거쳐 정부 주도 하에 회생을 모색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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