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선·로고 강조한 디자인으로 품격 높여…국산차, 동물에서 모티브 따오기도
할아버지와 아버지, 아버지와 아들. 이 관계에는 공통점이 있다. 똑같지는 않지만 서로 외모나 성격이 닮았다는 점이다. 세대가 흘러감에도 이들의 얼굴에 공통점이 존재하는 이유는 이들이 같은 유전자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에도 이같은 원칙이 존재한다. 차종은 달라도 같은 브랜드에서 만들었음을 알게 하는 그 징표가 바로 ‘패밀리 룩’이다.
과거에 출시된 차들을 보면 각 차마다 다른 디자인으로 꾸며져 있다. 그러나 기술과 디자인이 발전하면서 최근의 차들은 디자인의 정체성과 일관성을 갖추고 있다. 패밀리 룩은 단순한 외관으로서의 수준을 벗어나, 각 브랜드가 추구하는 다양한 가치를 표현하는 수단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키드니’는 사람의 신장(콩팥)을 뜻하는 영어 단어다. 이 이름은 서양인의 눈에 보이는 그릴 디자인이 누워 있는 신장과 비슷하게 생겼다고 해서 붙여졌다.
키드니 그릴 디자인의 탄생 유래에는 두 가지 설이 있다. ‘1933년 탄생설’과 ‘1962년 탄생설’이다.
‘1933년 탄생설’은 1932년 당시 BMW 수석 디자이너이던 프리츠 피들러가 새로 개발한 차에 키드니 그릴을 집어넣기 시작했고, 이것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이야기다.
반면 ‘1962년 탄생설’은 가장 유력한 유래로, BMW 디자이너였던 조바니 미켈로티가 이 디자인을 정립했다는 이야기다. 조바니 미켈로티는 키드니 그릴 외에도 BMW 차의 기하학적 차체 구조를 설계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BMW의 키드니 그릴은 세월이 흐르면서 그릴의 너비와 크기만 조정됐을 뿐, 두 개의 구멍을 둔 큰 틀에는 변화가 없다. 1970년대 발표된 초기 제품의 ‘콧구멍’이 너비가 좁은 모습이라면, 최근에 발표되는 차종의 그릴 디자인은 차를 가로로 넓게 보이게 하기 위해 긴 너비의 모습으로 진화했다.
오는 2월 말 출시가 예정된 BMW 신형 3시리즈의 전면 디자인도 키드니 그릴 디자인을 그대로 이어가되, 차를 좀 더 길게 보이게 하기 위한 노력이 첨가됐다.
가장 돋보이는 것은 삼각별 로고다. 벤츠의 디자인 철학은 ‘세계 어느 곳에서도 벤츠는 벤츠의 전통 그대로 보여야 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고든 바그너 벤츠 수석 디자이너 역시 “벤츠의 디자인은 그동안 유지해 온 전통에 혁신을 덧입히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 철학을 가장 잘 표현한 것이 벤츠의 로고다. 세계 모든 벤츠 차에는 벤츠 로고가 붙어 있다. 어떤 차는 보닛 위에 로고가 있고, 어떤 차는 그릴 한가운데에 로고가 있다. 벤츠 로고는 존재만으로도 벤츠의 이름값을 충분히 전달하는 디자인의 징표라고 할 수 있다.
벤츠의 패밀리 룩 중 돋보이는 또 다른 하나는 유난히 가로 선이 강조된 전면 그릴 디자인이다. 가로 선의 행(行) 개수와 굵기가 다를 뿐, 전체적인 가로 선은 변함이 없다. 이는 여러 차종을 막론하고 모든 벤츠의 디자인에 반영됐다.
가로 선을 강조한 디자인은 전체적으로 차를 넓게 보이는 효과를 낸다. 가로로 차가 넓어지면 안정적인 이미지를 구현할 수 있다. 벤츠의 가로 선을 강조한 디자인은 안정적 주행 성능을 뽐내는 벤츠의 이미지를 가장 잘 나타내는 표현 도구로 손꼽히기도 한다.
아우디의 패밀리 룩은 ‘모노 프레임’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말 그대로 전면의 라디에이터 그릴 틀이 두 개가 아니라 하나라는 뜻이다.
아우디의 대형 세단인 A8을 사례로 보면 패밀리 룩의 변화를 한눈에 알 수 있다. 1998년 등장한 1세대 A8과 2004년에 출시된 2세대 A8의 앞모습을 보면 라디에이터 그릴의 높이가 헤드 램프의 높이와 거의 같다. 이 디자인은 평범하고 안정적인 느낌을 보여주지만, 멋스러운 느낌과는 왠지 거리가 있어 보인다.
그러나 2005년 페이스리프트를 거친 A8의 새 얼굴은 안정적인 느낌에 멋을 추가했다. 두 개로 나뉜 것처럼 보이는 라디에이터 그릴의 틀은 큰 사각형으로 합쳐졌다. 차 앞면에 큰 방패를 붙여놓은 듯한 느낌을 제공한다.
아우디의 모노 프레임 패밀리 룩은 보는 이로 하여금 강한 임팩트를 주는 점이 특징이다. 모노 프레임 디자인은 우리 눈에 보이는 대상의 숫자를 줄여서 대상을 한 눈에 알아보기 쉽게 했다는 점에서 특징을 찾을 수 있다.
이러한 원리를 전문 용어로 ‘시소자(視素子)’라고 한다. 시소자의 크기가 크고 개수가 적을 수록 인지 속도도 빨라지고 이해하기 쉬워지는 셈이다. 아우디의 모노 프레임 패밀리 룩은 이러한 조형 원리에 따라서 제작됐다.
‘플루이딕 스컬프처(Fluidic Sculpture)’란 ‘흐르는 듯한 조각’이라는 뜻이다. 한국화에서 난초를 붓으로 그릴 때 나타나는 곡선미 넘치는 필치가 뿌리인 이 디자인은 강인함을 품고 있는 곡선의 유연함이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
기아차의 슈라이어 라인은 세계 4대 자동차 디자이너로 불리는 피터 슈라이어 기아차 디자인 총괄 부사장의 손길에서 탄생했다. 이 디자인은 우리 민족의 영물로 여겨지는 호랑이의 얼굴에서 모티브를 따 왔다.
기아차는 특징적이고 대중적인 디자인을 만들기 위해 우리에게 친숙한 호랑이의 인상을 형상화시켜 제품 특성을 강조했다. 2008년 등장한 로체 이노베이션의 그릴은 슈라이어 라인의 첫 사례. 호랑이의 코와 입모양처럼 위·아래 라인의 가운데가 안쪽으로 들어가 있는 모양이 특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