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각종 언론에서 저의 재임용 탈락 소식이 보도된 것을 보고, 매우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지난 월요일과 수요일 법원게시판 글을 통하여, 그리고 인사위원회에서 충분히 소명하였기에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인사위원회에서는 구체적인 '근무성적 현저히 불량'부분의 사유를 제시하지 못하였고, 근무평정에 관한 저의 문제제기에 대하여도 충분한 답변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재임용 탈락 공문을 받고서, 또 한차례 충격을 받았습니다. 법관인사규칙 제8조 제2항에 의하면,'대법원장은 연임신청 판사 중 연임하지 않기로 결정된 판사에 대하여는 그 취지 및 사유를 통지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저는 그래서 적어도 공문에는 구체적인 사유가 기재되어 있으려니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공문에는 다음과 같은 취지의 기재만 있었습니다.
'귀하에 대한 10년 동안의 근무성적평정결과 및 법관인사위원회의 연임적격에 관한 심의결과 등을 종합하여'
제가 법원게시판과 인사위원회에 제출한 방대한 소명자료에 대하여는, 아무런 판단도 기재되지 않은 채, 종전의 말만 반복할 뿐이었습니다.
아무리 외쳐도 들리지도 않는 높은 산성에 맞부딪친 기분입니다. 두 차례의 충격으로, 저는 지금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고, 글도 제대로 쓸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각종 인터뷰 요청을 사양하고 있습니다.
가장 합리적이고 법과 원칙에 충실해야 할 법원에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데, 그리고 당사자의 소명, 해명에는 전혀 답변조차 없는 이 마당에, 무슨 인터뷰가 필요할까요?
일단은 제 임기 만료일인 2월 17일까지, 10년간의 법관생활을 잘 마무리하는데 힘을 쏟겠습니다. 향후 저의 거취와 나아갈 방향 등에 관하여, 많은 분들을 만나 의견을 나눈 후, 추후에 헌법소원 등 법적 대응방침을 포함한 입장발표를 정식으로 하겠습니다.
저는 10년간 판사를 천직으로 알고 살았기 때문에, 당장 새로운 업무를 시작하기도 어려운 상태입니다. 그러나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저는 이번에도 위기를 기회로 삼겠습니다. 조만간 밝은 모습으로 당당하게 여러분 앞에 서겠습니다.
대한민국의 판사가, 철저한 비공개 원칙으로 인하여 10년 동안의 근무평정이 어떻게 매겨지고 있는지조차 모르고 지내다가, 갑작스럽게 단 2주 동안의 형식적인 심사절차를 거쳐, 그것도 명단도 공개되지 않은 인사위원들로부터 심의를 받고서, 마지막 통지받은 사유도 단 두 줄이었습니다.
헌법상 신분보장된 판사에서, 10년 계약직 직원으로 전락한 이 순간, 비정규직 노동자의 아픔을 절실하게 공감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