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20곳 평균 17개 업종운영…일감 몰아주기 등 규제·조정 필요
최근 정부와 정치권은 재벌개혁카드를 내놓으면서 재계를 압박하고 있다. 우선 정부는 그룹 평균에 비해 신규로 진출한 서비스업종 계열사들의 경영성과가 높게 나타나는 등 오너 일가 지분이 많은 계열사에 대해 일감 몰아주기가 편법 증여로 변질되고 있다는 지적에 따라 과세 방안을 마련했다. 정치권도 출자총액제한제와 순환출자 제한 등의 카드를 들고 나오고 있다. 이같은 규제의 발단은 대기업집단들의 계열사 확장에서 비롯됐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9일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3월말 기준 국내 20개 대기업집단의 평균 영위업종(금융업 제외)은 17.1개로 나타났다. 또 지난 2001년 10.6개였던 업종 수는 2002년을 제외하고 매년 증가 추세다. 삼성과 현대차그룹, SK, LG 등 4대 그룹의 업종 증가세가 가파르다. 4대 그룹 평균 업종은 현재 25.8개로 10년전 14.5개와 비교해 78%나 증가한 수치다. SK가 30개로 가장 많게 나타났으며 현대차(27개), LG(24개), 삼성(22개) 등의 순이다.
경제개혁연구소가 발표한 ‘국내 재벌그룹 팽창에 관한 분석과 그 대응방안 모색’(위평량·김우찬) 보고서는 2001~2011년 국내 40대 대기업 집단의 평균 계열사 수 증가율이 출자총액제 시행 기간 동안에는 4.3%에 불과했으나, 사실상 폐지된 2007년 이후에는 10.5%로 2.4배가 높아졌다고 밝히고 있다.
또 신규편입 계열사의 업종이 출자계열사와 전혀 다른 경우가 평균적으로 57%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서비스업종에 집중되는 경향을 보였다.신규편입 계열사들의 출자유형을 분석해보면 총수일가가 관여된 출자유형 비중은 18%, 계열사가 관여된 출자유형 비중 69% 등으로 나타났다. 특히 총수 일가가 관여된 공동출자 계열사의 경영지표가 다른 계열사들에 비해 월등이 좋다는 것이 확인됐다. 이에 따라 보고서는 대기업집단의 다각화가 경제력 집중의 심화와 서비스업종으로의 비관련 다각화, 일감몰아주기, 회사기회유용 등의 문제로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대기업집단들의 3대 주력업종(표준산업분류 기준) 변화 추이를 보면 기업 다각화를 경영진들의 전략적 선택으로 분석할 수 있다. 산업연구원의 정책자료 ‘기업집단 다각화 추이와 결정요인에 관한 분석’(하준)에 따르면 지난 2001년 20개 그룹의 주력 업종은 도매 및 상품중개업, 기타 기계 및 장비제조업, 기타 운송장비 제조업이 가장 많은 수를 차지했다. 2011년에는 종합건설업, 화학물질 및 화학제품제조업(의약품 제외), 도매 및 상품중개업의 비중이 가장 크다.
정책자료는 3대 영위업종으로 설정한 기업집단 내에 핵심 업종의 변동이 최근 10년간 활발하게 이뤄졌고 다각화는 이러한 변동과 관계가 있다고 시사했다. 특히 두 보고서는 기업집단의 다각화 성과에 대해 의미 있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경제개혁연구소 보고서는 40대 대기업집단의 자산규모가 2001~2010년 동안 연 평균 실질증가율이 12.32%나 증가했다고 분석하고 있다. 또 출총제가 시행된 기간(2001년-2006년)의 증가율 4.28% 보다 사실상 폐지된 2007년 이후의 증가율이 5.62%로서 1.3배 높았다. 이는 대기업 입장에서 보면 최근 10년간 기업집단 다각화 과정을 거치면서 급격히 부의 축적을 이뤘다고 해석할 수 있다. 산업연구원 정책자료에서는 기업집단 다각화가 수익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대기업집단의 ‘허핀달 지수’와 기업집단의 당기순이익률간의 상관관계는 양(+)으로 나타났다. 허핀달 지수는 기업집단의 다각화 수준을 볼 수 있는 지표로 특정 업종에 완전 특화하면 1이 된다. 1보다 낮을수록 기업다각화 수준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기업집단의 허핀달 지수와 당기순이익률이 양의 관계이면 기업다각화 수준과 수익성은 음(-)의 관계가 되는 셈이다.
대기업집단들의 허핀달 지수와 부채비율 상관관계는 음으로 나타났다. 허핀달 지수가 1에 가까울수록 부채비율이 낮아지는 경향을 보였다. 기업집단의 다각화 수준이 높을수록 부채비율도 크기도 커졌다는 셈이다. 또 기업집단의 집중화와 전문화 정도가 자본과 자산 모두에 대한 부채비율과 반비례했다. 이는 기업집단의 다각화가 전통적인 이유인 위험축소와 기피를 위한 전략이 아닌 부채의 확대를 통한 위험 수반 하에 진행됐음을 시사하고 있다.
산업연구원 하준 부연구위원은 보고서를 통해 “기업집단 다각화가 전반적으로 안정성을 높이기보다는 오히려 위험(부채비율)을 상승시키고 대부분의 업종에서 기업들 간의 중복진출의 심화로 인해 유효경쟁을 억압하는 폐해가 있다”고 밝혔다.
또 “기업집단의 다각화가 산업전반과 국민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를 감안하면 부정적 외부성이 일정 한도를 초과하면 어떤 식으로든 규제와 조정이 필요해 보인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