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광' 김대리의 가을, 여름보다 더 뜨겁다

입력 2011-10-18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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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사랑에 빠진 직장인들…직장인 78% "회사계열 구단 있어도 응원팀 고수"

‘그라운드의 가을 축제’ 프로야구 포스트시즌이 한창 진행 중이다.

야구장에서 뛰는 선수들도 바쁘지만, 어쩌면 그들보다 더 바쁜 이들도 있다. 바로 관중석의 팬들이다. 올해 프로야구 유료 관중은 총 680만9965명. 이 중 절반 이상은 20세 이상의 직장인으로 알려졌다.

자타공인 ‘야구 중독자’를 자부하는 열혈 야구광 직장인들은 낮이나 밤이나 야구 생각을 떨칠 줄 모른다. 간혹 지나친 ‘야구 중독증’이 업무에 혼란을 주는 경우가 있을 정도다. 이들에게 가을은 여름보다 더 뜨겁다.

#1. 롯데자이언츠의 열혈 팬인 부산 출신 직장인 이모(30)씨는 소문난 야구광이다. 그는 자가용에 하늘색 자이언츠 유니폼과 응원도구로 쓸 신문지를 늘 싣고 다닌다.

회사 내에서 야구 때문에 얼굴을 붉히는 적(敵)도 있다. 같은 부서 동료인 송모(31)씨다. 이씨와 송씨는 업무에 있어 큰 갈등 없이 사이좋게 잘 지내지만, 야구 이야기만 나오면 서로 으르렁거린다.

경북 구미 출신으로 삼성라이온즈의 골수팬인 송씨는 어느 날 아침 이씨와 언쟁을 벌였다. 업무 관련 문제로 시작된 설전이 야구 문제로 번졌다.

전날 밤 라이온즈가 ‘영남 라이벌’ 자이언츠에게 완패 당한 것이 분했던 송씨는 아침부터 이씨가 눈엣가시로 보였다. 마침 이씨가 회의 시간에 늦자 송씨는 “하여튼 그 팀(자이언츠) 팬들은 왜 다 그 모양이야”라며 면박을 줬다.

그러자 이씨는 “업무 시간에 늦은 죄는 인정하나, 내 응원팀을 모독하는 것은 참을 수 없다”며 언성을 높였다. 직속 상사가 겨우 말린 덕분에 큰 싸움은 면했으나, 두 야구광은 그날 내내 으르릉거렸다.

#2. 국내 주요 그룹의 계열사에 재직 중인 장모(34)씨는 얼마 전 직장 상사 최모(42)씨에게 꾸중을 들었다. 그룹에서 운영하는 프로야구단을 응원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얼마 전 장씨의 회사 직원들은 단체로 야구장을 찾았다. 그러나 장씨는 소속 회사 구단의 응원석이 아닌 상대팀 응원석으로 혼자 몰래 이동했다. 상대팀이 장씨의 응원팀이었기 때문이다.

경기 관람 중 장씨는 맥주를 사려고 구내 매점에 들렀다. 그 때 상사인 최씨와 우연히 마주쳤다. 하필 장씨는 상대팀의 응원용 유니폼을 입고 있었고, 이에 격분한 최씨는 “회사도 몰라보는 배은망덕한 사람”이라며 장씨를 나무랐다.

다음 날 출근 후에도 최씨의 구박은 이어졌고, 장씨는 “고향팀을 버릴 수는 없지 않느냐”며 항변했다.

◇10명 중 8명, 소속 회사 상관없이 응원팀 고수 = 실제 직장 내에서 이와 비슷한 일은 종종 발생하고 있다.

시장조사 업체 ‘이지서베이’가 직장인 5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야구 때문에 직장 동료와 언쟁을 벌인 적이 있다’고 응답한 사람이 67.8%나 됐다. 이들이 언쟁을 벌이는 이유는 ‘응원팀이 다르기 때문’이거나, ‘전날 경기 결과에 따른 감정싸움’ 등이었다.

‘응원팀이 소속 회사 계열 야구팀과 다를 땐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라는 질문에는 응답자의 77.9%가 ‘개인의 자유권리인 만큼 회사와 상관없이 자신의 응원팀을 고수한다’고 답했다.

‘상사로부터 꾸중을 면하기 위해 보이지 않게 원래 응원팀을 응원한다’(18.9%)는 대답과, ‘응원팀을 회사 계열 구단으로 바꿨다’(2.6%)는 응답은 소수에 그쳤다.

그러나 직급이 올라 갈수록 응원팀과 소속 회사 계열 구단의 상관관계는 밀접해졌다. 대리·사원급 직장인들 중 80.1%는 ‘개인 응원팀을 고수하겠다’고 말한 반면 부장급 이상 간부들은 67.7% 만이 ‘응원팀 고수’ 의견을 내놨다.

특히 부장급 이상 직장인의 9.7%는 ‘소속 회사의 계열 구단으로 응원팀을 바꾸겠다’는 의견을 냈다. 평균치보다 3배 이상 높은 응답률이다.

한편, ‘어느 구단을 가장 좋아하는가’라는 질문에는 롯데자이언츠를 응원한다는 응답이 24.4%로 가장 많았고, 기아타이거즈를 응원한다는 의견이 20.6%로 그 뒤를 이었다.

◇야구광 오너 덕에 야구 즐기는 직장인들 = 야구를 회사의 핵심 스포츠로 키우고 있는 몇몇 기업의 야구광 직장인들은 가을이 즐겁다. 대표적인 경우가 LG그룹이다.

야구에 대한 LG그룹의 관심은 매우 높다. 특히 오너인 구씨 일가의 야구사랑이 기업 내 야구 붐 조성에 한몫을 하고 있다.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LG트윈스 초대 구단주를 맡았다. 경남중 야구부 출신인 둘째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은 현재 한국야구위원회 총재를 맡고 있다. 지금도 사회인 야구를 즐긴다는 셋째 구본준 LG전자 부회장은 현 LG트윈스 구단주다.

야구광 오너 형제 덕에 LG그룹의 야구광 사원들은 매년 프로 경기장 수준의 그라운드에서 ‘진짜 야구’를 즐기고 있다.

LG그룹은 매년 시즌이 끝나면 LG·GS그룹의 스포츠타운인 경기도 구리 챔피언스파크에서 ‘LG트윈스 구단주기 직장인 야구대회’를 연다. 1990년 LG트윈스 창단 이후 21년째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는 LG그룹 계열사는 물론 GS·LS·LIG그룹 등 범 LG그룹 계열사 내 모든 직장인 야구단이 참여해 프로야구 경기만큼이나 열띤 플레이를 펼친다. 특히 실제 프로야구 선수들이 뛰는 천연 잔디 그라운드에서 경기가 열리는 만큼 경기 수준도 높은 편이다.

LG그룹 계열사 내 야구단에서 뛰고 있는 직장인 김정혁(30)씨는 “어릴 적 이루지 못한 야구선수의 꿈을 작게나마 이루게 돼 기쁘다”며 “내가 좋아하는 야구를 회사에서도 마음껏 즐기게 되니 애사심이 더 커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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