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로에 선 한국경제]⑬주권 잃은 국내 증시

입력 2011-10-11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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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금·기관자금 확충 외국인 투자 대항마 키워야

글로벌 경기침체 우려감에 국내증시가 ‘갈 지(之)’자 행보를 걷고 있다. 미국과 유럽이 경제공조 정책을 마련하며 사태진화에 나서고 있지만 실현 가능성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며 불안심리는 좀처럼 가시지 않고 있다. 문제는 국내 증시가 탄탄한 펀더멘탈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외 변수에 과도하게 휘둘리고 있다는 점이다. 그 중심에는 외국인 투자자가 있다. 코스피 시가총액 35%에 달하는 물량을 들고 있는 외국인들이 국내증시를 좌지우지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 지난 8월 미국 신용등급 강등소식에 5조원이 넘는 한국기업 주식을 팔아치웠다. 이에 코스피지수의 8월 한달간 변동성은 2.69%를 기록했다. 글로벌 경기불안의 진원지인 미국(2.26%) 보다 높은 수준이다. 이처럼 외풍에 국내증시가 취약한 이유에 대해 전문가들은 개방형 시장과 수출 주도형 산업구조 때문이라고 말한다. 외국인들의 ‘팔자’를 막아낼 만한 세력이 없다는 수급의 구조적 불균형도 문제점으로 지목되고 있다.

◇대형주 중심 압축매매 패턴 보여

2001년 이후 10년간 외국인들의 코스피 시가총액 평균 보유비중은 35.6%를 기록하고 있다. 여타 신흥국이 평균 10% 후반대를 보이는 것을 감안하면 상당한 규모다. 한국 증시의 높은 수익률이 외국인들의 투자를 유인하고 있다. 실제 2000년 이후 한국증시에서의 외국인의 1년 투자수익률은 15%, 2년 투자수익률은 31%에 달하는데 반해 인도, 홍콩, 브라질 등은 5~10% 초반대에 머물러 있다. 한국 증시에서 고수익을 얻은 만큼 경기불안감이 확산될 경우 제일 먼저 차익실현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특히 외국인들은 주도주를 중심으로 압축매매한다. 외국인의 매수세가 강했던 2003년 5월~2004년 9월월까지 외국인들은 운수창고, 운수장비, 화학업종을 대거 사들였다. 2009년 4월~2011년 1월에는 운수장비, 운수창고, 기계, 전기전자업종데 대한 외국인 보유비중이 급증했다. 이익모멘텀과 주가 상승률이 높은 주도주를 압축해서 사들였던 것이다. 즉 순매도할 여지도 대형주에 쏠려있단 얘기다.

정유정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증시가 방향성보다는 변동성을 보이는 경우에는 외국인도 저평가·소외업종 매수를 하는 모습도 관찰됐기는 하나 추세적으로 외국인들은 주도·대형주를 중심으로 매수에 나서는 특징이 있다”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수출주 중심의 산업구조를 주요인으로 꼽고 있다. 우리 경제가 국내총생산(GDP)대비 수출비중이 52%에 달할 만큼 수출주도형 체제를 갖추고 있어 세계경기에 민감할 수 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대외시장 개방도가 높아 매매가 자유롭다는 점도 약점으로 지목되고 있다. 한국 증시의 가장 큰 자랑거리인 글로벌 기업, 유동성, 빠른 매매시스템이 오히려 부담이 되고 있는 것이다.

권영선 노무라금융투자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한국 경제는 대외의존도가 높아 경기 하방기에는 글로벌 평균 경제성장률보다 성장률이 떨어지고 경기가 좋아질 때는 글로벌 평균보다 높은 성장률을 보인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선진 증시 안전판 마련 시급

외국인의 힘을 규제로 무력화시키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국내 기관의 역량을 키워야 한다고 말한다.

황성윤 한국거래소 유가증권시장본부장보는 “연기금이나 기관 자금을 확충해 하락장세를 방어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며 "학자금 펀드 등에 대한 세제 혜택을 통해 개인의 장기 투자자금을 유치하고 기관의 매수 역량을 강화시켜 외국인에 대한 수급 균형을 이룰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업계에서는 학자금펀드 소득공제(연 300만원 한도) 및 퇴직연금 불입액 소득공제 추가 확대와 10년 이상 장기주식형펀드에 대한 소득공제를 요구하는 내용의 의견을 정부에 제출하기도 했다. 세제지원이라는 ‘당근’으로 투자자들의 장기 투자를 유도해 증시 안정을 꾀하자는 계산에서다. 당초 이같은 업계의 요구에 시큰둥한 반응이었던 금융당국도 국내 증시 불안이 계속되자 긍정적으로 바뀌고 있다.

최근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한 공식석상에서 외국인 비중이 과다한 탓에 국내 증시 변동성이 높다는데 인식을 같이하며 “국내 투자자의 저변을 확대하고 연기금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이같은 문제들을 해결해야 한다"고 발언한 것.

김 위원장은 또한 “국내 투자자의 비중을 높이기 위한 종합 대응방안을 마련하겠다”며 개인의 장기 투자가 가능하고 투자를 통해 학자금을 마련하는 방안을 거론했다.

그동안 금융 당국이나 업계에서 장기펀드 세제 혜택 필요성이 지속적으로 나오기는 했지만 금융 당국 수장이 공개적으로 발언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에 시장에서는 금융 당국의 증시 자생력 확대를 위한 대책 마련에 속도가 붙을 것이란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김도형 한국거래소 시장감시위원장은 “증시 안정을 위해서는 정책적인 부분이 선행될 필요가 있다”며 “시장이 안정되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자금들이 자리를 잡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 연기금 비중 확대와 펀드 자금 유입을 통한 간접투자 확대는 긍정적으로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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