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로에 선 한국경제]⑦위기의 벤처산업

입력 2011-10-06 10:30수정 2011-10-06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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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D 예산 대폭 늘리고 '규제 전봇대' 확 뽑아야

한국형 실리콘밸리를 표방하며 테헤란밸리를 일구었던 90년대 벤처1세대 젊은이들을 기억할 것이다. 그 당시 이들은 번뜩이는 기술력으로 벤처 붐을 일으키며 너도 나도 벤처 창업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얼마 안 돼 벤처 버블이 붕괴되면서 빌게이츠 꿈꾸던 벤처 1세대들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다. 잘나가던 그들은 왜 사라졌을까.

90년대 당시 창업자, 정부 모두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벤처 붐을 맞이했기에 거품도 빨리 꺼진 것이다. 전문가들은 벤처 버블 원인으로 △자격 갖추지 않은 벤처 급증 △저조한 (재)투자 △기술 노하우 전수 부재 등을 꼽는다.

버블 붕괴 이후 10년이나 지난 지금 제 2의 벤처 붐이 일고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10년 전의 영광을 되찾기에는 시기상조라는 목소리도 강하다.

실제로 지난해 벤처기업협회가 300개 벤처기업을 대상으로 벤처생태계 수준을 평가한 결과에 따르면 경제적, 사회문화적, 과학기술·교육적, 법적·제도적 인프라 수준 모두 3.0점(5점 만점)대 내외로 상당히 열악한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투자활성화와 신뢰를 바탕으로 한 공정거래질서 구현에 대한 평가의 경우 부정적 시각이 각각 45%, 36.7%로 상당히 높았다.

◇ R&D 투자 부재는 ‘단팥없는 찐빵’ =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있어도 우수 인력이 없고 연구개발비 및 운영자금이 부족하면 그 회사는 더 이상 발전할 수가 없다. 이는 벤처기업 성장에 걸림돌로 작용하는 애로사항 중 하나는 부족한 연구개발(R&D)비라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벤처기업은 무엇보다 지속적인 제품 개발, 디자인, 마케팅 등을 위한 투자가 이뤄져야 살아남을 수 있다. 하지만 수익성 확보가 되지 않아 한계상황에 직면하게 되면 인력 이탈, 개발 중단 등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없게 된다. 국내에서 이처럼 벤처기업이 R&D 투자가 힘든 이유는 △법적·제도적 규제 △미흡한 산학연 기술개발 △대기업의 불공정 거래 등이다.

특히 법적·제도적 규제는 벤처기업들의 발목을 잡는다. 벤처기업이 살아남으려면 안 그래도 부족한 자금을 과도한 인증 획득에 쏟아부어야 한다는 것. 이로 인해 벤처기업들은 상당한 비용과 시간을 인증을 받는 데에 투자해야 한다. 게다가 제품이 업그레이드 될 때마다 동일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벤처기업협회가 32사를 중심으로 R&D 투자 관련상황에 대해 조사한 결과 이들 기업 중 절반에 가까운 15사의 투자 규모가 급격히 줄었다. 벤처기업협회 관계자는 “기술 중심의 벤처기업 특성상 R&D 투자와 혁신활동 만이 생존 수단”이라며 “벤처기업들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과감히 투자를 감행해 시장주도적 기술을 통한 제품개발, 지적재산권 확보 등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벤처 82% “투자유치 협상이라도 해봤으면”= 한국의 벤처캐피탈(VC) 평가는 미국과의 비교와 함께 늘 도마위

에 오른다. 미국은 재원 비중이 높고 인수합병(M&A)을 통한 회수시장이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는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벤처캐피탈 및 엔젤 투자 움직임이 소극적이다.

참신한 아이템과 뛰어난 기술력을 보유해도 돈이 없는 벤처기업들에게 가장 필요한 건 벤처캐피탈의 투자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는 것. 실제로 벤처기업협회가 지난해 벤처캐피탈 현황을 조사한 결과 벤처기업 대부분인 81.9%가 본격적인 투자유치 협상도 못해본 상태로 조사됐다.

이미 투자를 받은 상태는 13.1%, 투자유치 협상 진행 중인 경우는 불과 2.9%였다. 또 벤처캐피탈은 초기 기업 투자에 소극적이고 전문성이 미진해 자금 투자 외 거의 역할이 없다는 응답이 76.5%로 높게 나타났다.

게다가 대학 등 국내 하부구조의 역량도 미흡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미국은 실리콘밸리 인맥, 벤처자금, 회계법률 서비스 등 벤처기업의 생존력과 성공률을 높여주는 하부구조가 탄탄한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대학에서 조차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우수한 인재를 공급해주는 역할도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평가다.

벤처기업협회 관계자는 “아직 벤처기업의 창출, 성장, 회수 등의 선순환 메카니즘 작동이 미약하다”며 “이를 강화시킬 수 있는 지속적인 노력이 요구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 성공하려면 ‘기업가정신’ 조기교육을 = 우리나라에는 왜 페이스북 창업자와 같은 한국형 마크 주커버그가 탄생하지 못할까. 전문가들은 의외로 투자 등 외부적인 요인이 아닌 교육·문화적 가치관의 문제가 크다고 지적한다.

특히 벤처기업협회 정책연구팀 이미순 박사는 제도권 내 체계적인 기업가 정신과 창업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이 없다고 말한다. 미국은 이미 고등학생들의 창업에 대한 열기와 문화가 성숙돼 있고 3000개 이상의 대학에서 기업가 정신을 적극적으로 교육하는 데 반해 한국에서는 아직 대학에서만 형식적인 교육이 이뤄질 뿐 창업정신이 국민 정서기반 위에 형성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 박사는 “정부가 노력하는 모습은 보이지만 사후적인 처방에 불과해 결국 평면적인 대안 밖에 되지 못한다”며 “어릴 때부터 장기·체계적으로 교육해 기업가 정신이 체화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곧 창의력과 상상력이 발휘될 수 없는 암기위주의 주입식 교육과 획일적인 결과 평가 시스템과도 무관하지 않다. 벤처기업협회가 ‘벤처기업이 현재 가장 필요로 하는 교육’에 대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교육이 필요하다고 응답한 기업이 73.5%로 상당히 높았다.

이 박사는 그 외에도 △성공한 삶에 대한 가치관 부재 △실패에 대한 관용문화 부재 △흡입력, 독창성, 공갑대 형성 부족 △글로벌 감각 부족 등을 한계점으로 꼽았다.

황철주 벤처협회장도 “제대로 된 한국 벤처 전문가가 탄생되지 못하는 이유는 기업가 정신의 부재에서 온다”며 "나 혼자 돈만 벌면 그만이라는 이기심을 버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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