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로또·카드값 등 돈 관련 사항 많아 경제적 문제로 ‘한탕주의’팽배…사회안전망 구축 시급
# 은행에서 근무중인 이 모씨(47세·남)가 매달 손꼽아 기다리는 것은 바로 월급날이다. 피곤한 업무에 시달리면서도 회사를 계속 다닐 수 있게 해주는 것는 바로 월급날이 있기 때문이다. 대학에 다니던 딸이 올해 졸업하면서 이씨는 부부의 노후를 위해 저축을 늘려가고 있다. 퇴직 후에 있을 제2의 인생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몇 년 후 퇴직을 하고나면 부인과 함께 조그만 가게라도 운영할 생각이다.
# 강남의 중소기업에 다니고 있는 김 모씨(31세·남)은 요즘 여자친구와의 다툼이 잦아졌다. 여자친구는 빨리 결혼을 하자고 조르지만 김씨는 아직 준비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결혼을 하기 위해선 둘이 생활 할 수 있는 전셋집이라도 하나 마련해야하는데 대학 졸업 후 취업이 늦어진 김씨는 아직 모아둔 돈이 거의 없다. 더구나 홀어머니를 모시고 있기 때문에 매달 생활비로 나가는 돈이 만만치 않아 돈을 모으기 힘든 형편이다. 여자친구와 맞벌이를 하고 대출을 받아 결혼을 한다고 해도 아이를 낳고 난 후의 생활에 대해서는 벌써부터 한 숨을 쉰다. 이의 양육비와 교육비를 둘이 감당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 때문이다. 김 씨는 여자 친구를 만나고 있지만 요즘 들어 어쩌면 결혼하기 힘들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 여자친구에게 미안한 감정이 앞선다.
◇ 남녀 모두 최대 관심사는 ‘월급날’= 직장인들은 하루하루 어떤 생각을 하며 살고 있을까? 취업포탈 잡코리아가 최근 국내외 직장인 92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직장인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자신이 맡은 업무나 일에 관한 것이 아니었다. 결과는 ‘월급날’이었다.
이외에도 ‘로또’, ‘퇴근’, ‘카드값’ 처럼 직장일과는 관계없는 일들에 많은 관심을 사항들이 직장인들의 최대 관심사인 것으로 조사됐다.
공통적인 관심사(복수응답)는 ‘월급날’이 36%로 가장 많았다.
하지만 2위부터는 남녀의 관심사가 달라졌다. 남성 직장인들 자신의 머릿속을 채우고 있는 관심사로 △로또(28.2%) △카드값(24.6%) △배우자(또는 애인 22.6%) △퇴근(21.9%)을 꼽았다.
중소 무역업체에 근무하고 있는 백 모씨는(33세·남)는 이번 주 월요일에도 로또를 샀다. 백 씨는 매주 월요일 로또를 구입하고 ‘로또 당첨’의 꿈으로 일주일 버틴다. 그는 “로또가 당첨되면 하고 싶은일을 상상하면 기분이 좋아지고 기운이 난다”며 “로또가 생활의 활력소를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백씨는 매주 토요일 실망을 거듭하지만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그는 일주일에 만원씩 기부하는 셈치고 매주 로또를 구입하고 있다.
실제로 온라인 취업포털 사람인이 지난 7월 직장인 732명을 대상으로 “귀하는 복권 당첨으로 인생역전을 꿈꿔본 적 있습니까”라고 설문한 결과 88.3%가 ‘있다’라고 답하는 등 직장인들 대부분은 복권을 통해 인생역전을 꿈꾸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반해 여성 직장인들은 △퇴근(30.8%) △카드값(24.9%) △주말계획(21.7%) △이직(17.1%) 순으로 머릿속이 채워져 있다고 답했다.
이 외에도 직장인들의 머릿속을 채우고 있는 관심사로는 △점심메뉴(10.5%)와 △휴가(9.6%)가 있었고, 기타 답변으로는 △재테크 △성형 △연봉인상 △노후걱정 등이 있었다.
◇ 직장인들의 현실 불만족이 주요 원인= 이처럼 직장인들이 직장생활 외의 요소에 관심을 갖는 것은 현실을 도피하고자 하는 욕구가 강하기 때문이다.
서이종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직장인들이 최대 관심사가 월급날, 로또, 카드값 등으로 표출되는 것은 우리사회의 구조적 문제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직장인들이 경제문제에 시달리며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 직장인들은 카드값 걱정으로 월급날만 기다리고 있거나 ‘로또 대박’을 꿈꾸며 한탕을 노리고 있다는 것이다.
서 교수는 “직장인들의 현실이 그만큼 어렵다는 증거”라며 “아이들 교육문제, 주거문제 등 기본적인 것을 해결하기 조차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서 교수는 “특히 젊은 세대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부모의 도움없이는 전셋집 한 칸 마련하기 힘든 상황”이라며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결혼을 포기하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열심히 일하면 노후가 보장되어야 하지만 한국사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며 “열심히 일해도 기본적인 삶 조차 보장되지 않는 사회로 변하고 있고 대부분의 직장인들의 경제적으로 허덕이며 살아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러한 문제점이 해결되기 위해선 정부가 기본적인 사회안전망이 만들어줘야하고 기업에서도 고용안정성을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