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축은행 사태가 청와대와 민주당 간 폭로전이 갈수록 가관이다. 민주당 저축은행 진상조사위원회 위원장인 박지원 전 원내대표는 31일, 폭로 제1탄으로 삼화저축은행 사외이사였던 정진석 정무수석과 신삼길 삼화저축은행 명예회장에 대해 ‘골프장-청담동 한정식 집 회동 기록’ 카드를 꺼냈다.
이에 질세라 청와대는 “박 전 원내대표 측이 보해저축은행 BIS(국제결제은행 기준 자기자본비율) 적용을 완화해달라고 청탁했으며 관련 서류까지 가지고 있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야당이 근거 없는 의혹만 제기하고 있다.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나면 어떤 식으로든 책임을 져야 할 것”며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민생정당을 자처하고 있는 민주당 워크숍은 ‘저축은행 선전포고’의 장이 돼버렸다. 박 전 원내대표는 하루 종일 회의장과 기자실, 복도를 바쁘게 오가며 의원들과 기자들을 상대로 정권 실세들의 저축은행 비리 ‘강의’를 벌였다. “하나씩 하나씩 다 까발려주겠다”는 경고도 잊지 않았다. 이런 식이면 국민의 의혹을 해소해야 할 국정조사도 여야 공방만 벌이다 끝날 가능성이 높다.
정치권의 감정싸움 속에 정작 저축은행사태 재발방지를 위한 금융시스템 개선과 저축은행 피해대책은 6월국회 초점에서 멀어지는 것은 더 큰 문제다. 이날 기자의 뇌리 속에 남은 건 “(청와대가) 부산지역구 의원들은 예금자 보호법 개정안을 발의했는데 왜 (나는) 찬성하지 않느냐고 물어보더라”는 박 전 원내대표의 스치듯 지나간 한 마디다.
개정안은 저축은행 피해자들을 위한 대책으로 예금자보호 한도액 5000만원을 초과하는 금액까지 정부가 보상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포퓰리즘이라는 비판이 거세지만, 폭로전에 혈안이 된 정치권에선 이런 대책 논의마저 실종된 게 현실이다. 권력형 게이트의 진실을 밝히는 것 이상으로 평생 모은 돈을 한 순간에 잃은 피해자들을 구제해 줄 방법 마련 역시 중요하다. 지난 4월 저축은행 청문회가‘네 탓 공방’만 벌이다 결국 피해자들의 가슴을 멍들게 한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