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혁 부국장 겸 증권부장
강만수 회장은 내부적으로 작성한 우리금융 인수 검토 보고서를 언론에 공개하며 구체적인 플랜을 제시했다. 그러자 우리금융은 “산은의 우리금융 인수는 재정자금으로 공적자금을 상환하는 것과 같이 국민을 기만하는 행위”라고 포문을 열고 보고서 내용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대통령의 남자인 강만수 회장과 이팔성 회장이 메가 뱅크를 놓고 힘겨루기를 하고 나선 것 이다.
인재 없는 메가뱅크는 사상누각
국제경쟁력을 갖춘 초대형 은행은 금융산업 발전을 위해 필요하다. 그러나 국제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선 여러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역시 가장 중요한 건 사람이다. 세계적인 투자은행을 이끌어나갈 수 있는 인재가 있어야 한다. 메릴린치가 세계 최고의 투자은행이 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바로 인재다. 인재가 없이 몸집만 키우면 사상누각(沙上樓閣)이 될 수밖에 없다.
경영자의 리더십도 중요하다. 금융기관의 글로벌 경쟁력은 한 순간에 이뤄지지 않는다. 수장(首長)이 미래에 대한 비전을 설정하고 책임감 있게 계획을 구체화 시켜나갈 때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금융기관으로 커 나갈 수 있다. 손실을 봐도 그것이 생산적인 손실이라면 눈 딱 감고 지나갈 수 있는 배짱도 필요하다. 이는 기업문화와도 연관이 되는데 지금 우리나라 금융기관과 같은 기업문화로는 경쟁력을 기대하는 게 무리다.
초대형 은행을 운영, 유지할 수 있는 시스템과 제도도 있어야 한다. 미국이 금융위기를 겪었던 것은 바로 시스템이 망가졌고 망가진 시스템을 관리 감독하는 제도에 구멍이 뚫렸기 때문이다.
그럼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국제적인 안목을 갖춘 인재들은 우리나라 금융기관을 외면한다. 설령 거액을 받고 자리를 잡았다 해도 오래 못 버티고 떠나고 만다. 국내 금융기관에 근무하다 글로벌 투자은행으로 이직한 한 파생금융상품 전문가가 “돈은 둘째 치고라도 기업문화가 맞지 않았다”고 토로한다. 그렇다. 증권사마다 인베스트먼트 뱅킹을 외치고 있지만 좀처럼 결실을 맺지 못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인재를 키울 수 있는 토양이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경영자도 마찬가지다. 길어야 3~4년 일하고 떠나야 하는 몸이다 보니 경쟁력을 키운다는 게 현실적으로 어렵다. 지금 은행이나 증권사에 국제적 안목을 보유한 금융통 CEO가 과연 몇 명이나 되나. 상당수 CEO들이 이런 저런 연줄로 자리를 꿰차고 있는 게 현실이다.
정권의 치적으로 이용돼선 안 돼
"파리 목숨 CEO가 무슨 수로 국제 경쟁력을 갖춘 회사를 만들 수 있겠나. 임기동안 큰 사고만 내지 않으면 되지” 라고 말한 증권사 사장의 무기력한 발언은 금융산업의 낙후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번에 메가뱅크를 놓고 충돌하고 있는 두 회장의 리더십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정권이 바뀌면 물러날 가능성이 높은 사람들에게 거대 인수합병에 필요한 리더십을 기대하는 건 무리 일 수밖에 없다. 설령 이런 현실을 의식해 속전속결로 한 방에 끝내려한다면 더 큰 화를 자초할 수도 있다.
시스템이나 제도도 미비한 게 현실이다. 특히 현재 계획대로라면 일단 거대 국유은행을 만든 후 순차적으로 민영화를 시키겠다는 것인데, 과연 거대 국영은행이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지 의문이고 민영화 과정도 생각처럼 순탄치 만은 않을 것이다. 우리금융 민영화만 해도 덩치가 너무 큰 탓에 인수자를 구하지 못했다. 그런데 자산 500조원이 넘는 거대 국영은행을 만들어 놓고 이를 민영화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이겠는가. 또한 두 은행이 합쳐졌을 때 경쟁력 있는 글로벌 은행을 키울 수 있는 문화가 조성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자위가 우리금융 매각 추진방안을 발표해 주사위는 던져졌다. 무조건 크다고 좋은 것은 아니다. 위에서 지적한 필요조건이 충족되지 않은 채 탄생한 메가뱅크는 공룡이나 다름없다. 한마디 더 덧붙인다면 항간의 우려처럼 메가뱅크가 정권의 치적으로 이용돼서는 결코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