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 인사들이 감사직 후보군에서 모조리 배제되면서 금융권이 눈치만 보고 있다. 올해 금융권에서만 30여명의 상근감사의 임기가 끝나지만 마땅한 후임자를 찾는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또 당초 전·현직 임직원의 금융회사 감사 추천 불가를 공언했던 금융당국이 지난 9일에는 금융사의 상근감사 제도를 아예 폐지하고 사외이사로 구성된 감사위원회를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혀 금융권에선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10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지난 3~6일 상근감사를 신청을 받은 메리츠종금증권은 오는 18일까지 공모를 연장했다. 따가운 외부 시선에 금감원 출신 인사들이 신청을 꺼려 백수현 감사의 후임자를 구하지 못했기에 더 시간을 두고 결정하자는 조치였다.
이번주 후임자를 뽑아 이달 27일 주주총회에서 선임하려던 일정도 늦춰지게 됐다.
앞서 대신증권은 지난 2일 주총 소집 결의에서 금감원 회계서비스국장 출신을 새로 선임하는 안을 상정했다가, 9일 금감원 출신이 아닌 김경식 메릴린치증권 서울지점 상무로 교체하는 정정공시를 냈다.
한화·토러스·현대·NH·SK 등 감사 임기가 이달 끝나는 증권사들은 후임자 선임 문제로 눈치만 보고 있다.
금감원 몫으로 채워졌던 관행에 제동이 걸리면서 적임자를 어디에서 영입해야 할지 묘안이 떠오르지 않기 때문이다.
보험과 은행권의 고민도 다르지 않다. 보험사의 경우 생명보험사는 14개 중 6곳, 손해보험사 12개사 가운데 3곳의 감사 임기가 올해 끝난다. 일단 금감원 출신 감사의 신규 선임이나 연임을 배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감사 선임을 앞둔 보험업체들이 서로 눈치를 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보험 업무는 은행 업무와 다른 분야여서 전문가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기존 감사의 연임을 결정한 증권사들은 가시방석에 앉은 형국이다.
신영증권은 지난 4일 이사회에서 김종철 감사를 2년 임기로 재선임하기로 했다. 한국투자증권도 조만간 이사회에서 김석진 감사의 연임을 결정할 예정이다. 이들 증권사는 업무 성과와 전문성 등을 고려했음에도 외부에 `낙하산 인사'로 비치는 것에 큰 부담을 느끼고 있다.
전문가들은 상근감사제 폐지 검토와 관련해 감사 기능이 약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는 “상근감사를 없애면 사외이사로 구성된 감사위원회가 제대로 감시 기능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제도를 흔들기보다는 대표이사를 실질적으로 견제할 수 있는 운용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감사가 감사활동을 얼마나 제대로 했느냐에 따라 보수에 차별을 두는 방안도 검토할 만하다”고 덧붙였다.
김우찬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도 “비상근 감사 체제는 지금보다 감사 기능을 약화시킬 수 있다”며 “상근이냐 비상근이냐를 떠나 기존 법 테두리 안에서 효율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