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春), 청첩장이 두려운 직장인들

입력 2011-04-26 11:19수정 2011-04-26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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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하는 하지만 축의금 지출에 축나는 지갑 '덜덜'

# 직장인 김모(30)씨는 계절 중에 봄과 가을을 가장 싫어한다. 날씨가 따듯한 것은 좋다. 다만 이 날씨 속에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지인들의 결혼식이 싫을 뿐이다.

이번 주 토요일엔 직장 상사가 결혼을 한다. 주말에 시간을 뺏기는 것도 억울한 데 대상이 직장 상사라니, 김씨는 머리가 지끈거린다. 솔직히 가기 싫다.

하지만 안 갈 수도 없다. 앞으로 계속 같은 부서에서 볼 사람이기 때문이다. 차라리 눈 한번 감고 갔다 오는 게 나중을 위해선 좋을 것 같다.

가기로 마음을 정하니 ‘축의금’이 마음에 걸린다. 평소 좋아하지 않던 상사에겐 축의금을 많이 쓰고 싶지 않다. 하지만 나중에 상사가 이를 기억이라도 한다면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질 것 같다는 걱정도 든다. 소심해진 김씨는 5만원과 10만원 사이에서 고민을 한다. 김씨에겐 이것도 상당한 스트레스다.

▲자료제공=인크루트
바야흐로 봄이 다가왔다. 따뜻한 계절에 맞춰 전국 각지엔 결혼식이 줄을 잇는다. 결혼적령기에 들어선 많은 남녀가 사랑의 결실을 맺는 계절이 바로 봄, 그리고 가을이다.

보통 결혼하는 남녀의 나이는 20대 중후반에서 30대 초중반 정도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몇년 안된 직장인들의 나이와 일치한다.

학생일 때는 주변 지인들 역시 대부분 같은 학생들이라 결혼식 빈도가 비교적 낮다. 하지만 직장인이 되고나서는 그 빈도가 높아진다. 가깝게는 친한 친구에서부터 선배, 직장 상사까지 알고 지내는 사람들의 범위가 넓어지기 때문이다.

결혼식이 몰리는 봄엔 빈도가 더 높아진다. 한 주 걸러 결혼식이 이어진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하지만 이것이 계속되면 슬슬 부담이 되기 시작한다. 지갑이 얇은 직장인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없는 돈을 축의금으로 써 댄다. 얇아지는 지갑과 함께 직장인들의 가슴도 휑해진다.

◇ 축하도 축하지만… 축의금에 ‘덜덜’

우리나라 직장인 10명 중 9명은 결혼식에 부담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취업포털 인크루트의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직장인의 89.7%가 결혼식 참석에 부담을 느낀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특히 직장인 75.3%가 경제적 부담을 선택해 단연 1위를 차지했다. 인크루트에 따르면 설문에 참여한 직장인들의 평균 축의금 액수는 약 5만4000원이었다.

유치원교사 최모(30)씨는 최근 한 주에 한 번씩 찾아오는 지인들의 결혼식 때문에 우울하다. 매주 적어도 5만원 이상이 지출되다보니 경제적 부담이 만만치 않다.

최씨는 “봄 같은 경우엔 결혼식이 너무 잦아 고민이다”며 “주가 바뀔 때마다 지갑의 무게가 가벼워지는 걸 느낀다”고 말했다.

하지만 미혼인 최씨는 미래 자신의 결혼식을 위한 투자라고 생각하고 꾸준히 축의금을 내고 있다. 뿌린 만큼 거둔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렇다면 축의금은 어떻게 산정될까. 취업포털 사람인 설문조사에 따르면 직장인의 절반 이상(55.6%)이 친밀도에 따라 축의금 액수를 정한다고 대답했다.

지난 23일에도 결혼식에 다녀왔다는 직장인 박모(28)씨는 “솔직히 별로 친하지 않은 사람 결혼식엔 3만~5만원 정도 내는 편이지만 친하면 10만원 이상은 내고 있다”고 답했다.

다음으론 △‘주변 사람들이 내는 액수에 따라서’(20.6%) △‘당시 경제적 여건에 따라서’(20.6%) △‘이전 당사자에게 받았던 액수에 따라서’(5.0%) 등이 뒤를 이었다.

◇직장상사 결혼식이 ‘가장 부담’

직장인들은 축의금 이외에도 결혼식 대상자에 따라 부담을 느끼는 것으로 조사됐다.

인크루트 조사결과에 따르면 직장인들은 직장 상사 및 동료(37.4%)의 결혼식을 가장 부담스러워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많은 직장인들이 ‘직장’이라는 범주 안에 있는 사람들을 부담스럽게 여기고 있다는 한 예다.

지난 주말 직장 상사의 결혼식에 다녀왔다는 직장인 이모(30)씨는 “솔직히 딱히 친한 사이도 아닌데, 눈치가 보여 어쩔 수 없이 다녀오게 됐다”며 “축의금도 얼마나 해야 할지 난감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결국 이씨는 다른 직장 동료들에게 물어본 후 5만원을 냈다고 한다.

이씨는 “솔직히 직장상사 및 동료들은 ‘일적’으로 묶여 있는 사이이기 때문에 축의금 액수도 다른 사람들보다 더 신경이 쓰이는 게 사실”이라며 “결혼식에 가도 걱정, 안 가도 걱정인 게 회사사람들의 결혼식”이라고 밝혔다.

다음으로 직장인들은 거래처 관계자(31.3%)들의 결혼식이 부담스럽다고 응답했다. 역시 ‘일적’인 범주 안에 있는 부류다. 그 뒤를 이어 부담스러운 결혼식으로는 △학교 선후배 및 동기(16.5%) △먼 친척(11.5%) △기타(3.3%) 등이 있었다.

◇혼기 놓친 미혼 직장인들에겐 심리적인 ‘공허함’까지

결혼식은 직장인들에게 경제적(75.3%), 시간적(15.4%)인 부담을 안겨 준다. 이중에서도 경제적인 부담이 절대적이다.

하지만 소수 심리적(9.3%)인 부담을 느끼는 직장인들도 존재했다. 이들에게 결혼식은 경제적인 부담도 크지만 심적인 공허함과 압박감을 주는 행사 중 하나다. 여러 부담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더 큰 타격을 주게 된다.

이 부류에 속한 직장인들은 대부분 혼기를 놓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소위 말하는 ‘노총각’, ‘노처녀’ 직장인들이다.

모 IT업체에서 근무 중인 서모 과장은 올해로 37살이다. 서 과장은 대부분의 결혼식을 일 핑계로 가지 않고, 축의금만 보낸다. 그렇게 축의금만 보낸 결혼식이 지난해에만 6번이나 있었다. 서 과장은 결혼식이 있을 때마다 자신에게 몰려드는 관심이 부담스럽다.

서 과장은 “결혼식 때마다 동료들이나 상사들의 ‘언제 장가갈꺼냐’는 질문 때문에 곤혹스럽다”며 “이런 얘기도 한두 번이지 매번 듣다보니 솔직히 짜증이 난다”고 말했다.

홍보대행사에서 일하는 임모(40) 부장 역시 마찬가지다.

임 부장은 “특히 가족 및 친척 결혼식이 가장 겁이 난다”며 “특히 내가 여자라 친척들이 ‘시집 언제 가느냐’며 더욱 성화다. 압박감이 장난이 아니다”고 밝혔다.

이어 “결혼식 때마다 ‘결혼’에 대한 압박감과 공허함 때문에 하루 종일 우울해진다”며 씁쓸함을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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