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창수號 2개월...재계는 사면초가인데 존재감이 없다

입력 2011-04-26 11:03수정 2011-04-26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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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련 뭐하나...'해체론'까지 들먹

재계가 궁지에 몰려있다. 중동 사태와 일본 대지진 여파에 따른 글로벌시장 위축이라는 대외적 변수 외에도 동반성장과 이익공유제 등 민감한 정책들이 기업을 옥죄고 있다. 심지어 정부가 대기업의 계열사 몰아주기에 철퇴를 가하며 ‘공평과세’를 구현하겠다고 나섰다. 자칫 기업을 보는 국민들 여론과 정치권에 반기업정서가 되살아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재계는 사면초가에 처했지만, 재계 입장을 대변해야 할 전경련은 없다.

26일 한 재계 관계자는 “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전경련) 허창수 회장 체제가 24일로 두 달을 맞았다”며 “허 회장은 취임 초기 전경련의 나쁜 이미지를 개선하고 국가 발전에 앞장설 것이라고 밝혔지만 재계 안팎에서는 허 회장 체제 이후 전경련이 달라진 것이 없다”고 평가했다.

재계에서는 정부와 재계와 소통이 단절된 상황에서 기업의 입장을 대변해야 할 전경련이 하는 역할에 대한 회의론이 팽배하다. 전경련 ‘해체론’이나 ‘무용론’, ‘청와대 2중대’, ‘친목모임 주선 단체’라는 비아냥까지 나오고 있다.

10대 그룹 한 관계자는 “소통을 하려고 힘썼던 참여정부에 비해 이번 정부는 소통을 못해도 너무 못한다”며 “대기업의 의견을 전혀 안 들으려 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그런데도 기업의 입장을 대변해야 할 전경련은 뭐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재계는 지난달 국회를 통과한 개정 상법으로 날벼락을 맞았다. 준법지원인제는 물론 ‘회사기회 유용 금지’ 및 ‘ 계열사 일감몰아주기에 대한 규제’ 등 민감한 사안이 대부분 원안 대로 통과돼 재계의 불만이 이만저만 아니다.

대기업 이사들이 친·인척이 설립한 회사에 ‘매출 몰아주기’를 못하게 하는 ‘이사의 자기거래 승인대상 확대’등 민감한 내용들이 많았지만 재계 입장을 대변해야 할 전경련은 문제 삼지 않았다. 개정 법률안에 대해 공청회는 물론 여러 차례 의견 개진기회가 주어졌으나 전경련은 적극 나서지 않은 것이다.

전경련 관련 변호사 한 명을 통해 법사위 의원들에게 의견 개진을 했다는 점에서 재계는 전경련에 대한 무용론까지 일고 있다.

재계의 다른 관계자는 “재계의 의견을 모아 전달해야 하는 전경련이 상법 개정안이 통과하는 동안 무엇을 했는 지 모르겠다”며 전경련 역할에 대해 비판했다.

반면 전경련은 최근 ‘밥그릇 싸움’ 논란에 휩싸였다. 국가 경제 발전을 의연하게 이끌어가야 할 재계 맏형이 ‘밥그릇 욕심’에 하위 단체들을 쥐락펴락하는 모습이 볼썽 사납다는 지적이다. 비판의 중심에는 정병철 전경련 상근 부회장이 있다.

정 부회장은 조만간 전경련 싱크탱크인 한국경제연구원(한경연) 상근 부회장을 겸하게 된다. 그동안 한경연은 전경련 회장이 연구원 회장을 맡아왔지만 이번에 상근 부회장 직이 신설돼 전경련 상근부회장인 정 부회장이 맡게 된 것이다. 전경련 회장 직속이던 한경연을 상근 부회장 밑에 두는 것은 싱크탱크의 위상 추락과 자율성 훼손으로 이어진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상근 부회장직 신설이 허창수 전경련 회장 부임 전 추진된 사실 상 ‘정병철 작품’이라는 점에서 ‘자신이 스스로를 천거했다’는 뒷말이 무성하다.

이에 앞서 정 부회장은 지난해 5월 한국광고주협회장에 오르기도 했다. 당시 협회는 일부 시민단체의 특정 기업 불매운동을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전경련과 갈등을 빚어왔다. 결국 전경련의 압박은 통했고 정 부회장이 협회장에 올랐다. 이로인해 지난 1988년 전경련 주도하에 ‘독립기구’로 설립된 광고주협회의 존립 철학도 퇴색하고 말았다.

전경련 사무국을 책임지는 상근부회장의 권한이 이처럼 비대해진다는 데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한 재계 관계자는 “재계를 대신해 시장경제주의를 지켜야 할 전경련 사무국이 그동안 상법 개정안이나 ‘초과이익공유제’ 등에 대해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해 기업들을 곤경에 빠트린 채 상근 부회장의 자리만 넓히는 등 사조직화돼 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말했다.

허 회장의 전경련 회장 취임 이후 가장 많은 기대를 모은 것은 LG그룹 등 전경련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는 대기업들과의 관계 회복이다. 그러나 이 역시 아직까지는 별다른 움직임이 없다.

LG관계자는 “전경련이 재계 대표단체로서 역할 정립을 제대로 하고 재계 목소리를 제대로 담아낼 때 구본무 회장이 참석하는게 의미가 있다”며 “구 회장과 허 회장의 오랜 친분이 참석 기준은 아니지 않느냐”며 전경련의 변화가 우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재계 안팎에서는 전경련이 일부 핵심 간부의 사조직처럼 운영되고, 업무는 뒷전으로 돌린 채 학연과 지연을 미끼로 정치권에 줄대기를 하면서 겉으로는 ‘대외 협력’을 주장하는 일부 조직원들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크다.

창립 50주년을 맞아 전경련의 수장이 된 허 회장은 ‘재계 맏형’의 위상 강화와 전경련의 역할을 찾고, 조직 내부를 정비하기를 원하는 재계의 목소리를 귀담아 들어야 한다.

뼈를 깎는 자기 반성과 개혁 없이는 재계의 구심점 역할을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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