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련 뭐하나...'해체론'까지 들먹
26일 한 재계 관계자는 “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전경련) 허창수 회장 체제가 24일로 두 달을 맞았다”며 “허 회장은 취임 초기 전경련의 나쁜 이미지를 개선하고 국가 발전에 앞장설 것이라고 밝혔지만 재계 안팎에서는 허 회장 체제 이후 전경련이 달라진 것이 없다”고 평가했다.
재계에서는 정부와 재계와 소통이 단절된 상황에서 기업의 입장을 대변해야 할 전경련이 하는 역할에 대한 회의론이 팽배하다. 전경련 ‘해체론’이나 ‘무용론’, ‘청와대 2중대’, ‘친목모임 주선 단체’라는 비아냥까지 나오고 있다.
10대 그룹 한 관계자는 “소통을 하려고 힘썼던 참여정부에 비해 이번 정부는 소통을 못해도 너무 못한다”며 “대기업의 의견을 전혀 안 들으려 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그런데도 기업의 입장을 대변해야 할 전경련은 뭐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재계는 지난달 국회를 통과한 개정 상법으로 날벼락을 맞았다. 준법지원인제는 물론 ‘회사기회 유용 금지’ 및 ‘ 계열사 일감몰아주기에 대한 규제’ 등 민감한 사안이 대부분 원안 대로 통과돼 재계의 불만이 이만저만 아니다.
대기업 이사들이 친·인척이 설립한 회사에 ‘매출 몰아주기’를 못하게 하는 ‘이사의 자기거래 승인대상 확대’등 민감한 내용들이 많았지만 재계 입장을 대변해야 할 전경련은 문제 삼지 않았다. 개정 법률안에 대해 공청회는 물론 여러 차례 의견 개진기회가 주어졌으나 전경련은 적극 나서지 않은 것이다.
전경련 관련 변호사 한 명을 통해 법사위 의원들에게 의견 개진을 했다는 점에서 재계는 전경련에 대한 무용론까지 일고 있다.
재계의 다른 관계자는 “재계의 의견을 모아 전달해야 하는 전경련이 상법 개정안이 통과하는 동안 무엇을 했는 지 모르겠다”며 전경련 역할에 대해 비판했다.
반면 전경련은 최근 ‘밥그릇 싸움’ 논란에 휩싸였다. 국가 경제 발전을 의연하게 이끌어가야 할 재계 맏형이 ‘밥그릇 욕심’에 하위 단체들을 쥐락펴락하는 모습이 볼썽 사납다는 지적이다. 비판의 중심에는 정병철 전경련 상근 부회장이 있다.
정 부회장은 조만간 전경련 싱크탱크인 한국경제연구원(한경연) 상근 부회장을 겸하게 된다. 그동안 한경연은 전경련 회장이 연구원 회장을 맡아왔지만 이번에 상근 부회장 직이 신설돼 전경련 상근부회장인 정 부회장이 맡게 된 것이다. 전경련 회장 직속이던 한경연을 상근 부회장 밑에 두는 것은 싱크탱크의 위상 추락과 자율성 훼손으로 이어진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상근 부회장직 신설이 허창수 전경련 회장 부임 전 추진된 사실 상 ‘정병철 작품’이라는 점에서 ‘자신이 스스로를 천거했다’는 뒷말이 무성하다.
이에 앞서 정 부회장은 지난해 5월 한국광고주협회장에 오르기도 했다. 당시 협회는 일부 시민단체의 특정 기업 불매운동을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전경련과 갈등을 빚어왔다. 결국 전경련의 압박은 통했고 정 부회장이 협회장에 올랐다. 이로인해 지난 1988년 전경련 주도하에 ‘독립기구’로 설립된 광고주협회의 존립 철학도 퇴색하고 말았다.
전경련 사무국을 책임지는 상근부회장의 권한이 이처럼 비대해진다는 데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한 재계 관계자는 “재계를 대신해 시장경제주의를 지켜야 할 전경련 사무국이 그동안 상법 개정안이나 ‘초과이익공유제’ 등에 대해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해 기업들을 곤경에 빠트린 채 상근 부회장의 자리만 넓히는 등 사조직화돼 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말했다.
허 회장의 전경련 회장 취임 이후 가장 많은 기대를 모은 것은 LG그룹 등 전경련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는 대기업들과의 관계 회복이다. 그러나 이 역시 아직까지는 별다른 움직임이 없다.
LG관계자는 “전경련이 재계 대표단체로서 역할 정립을 제대로 하고 재계 목소리를 제대로 담아낼 때 구본무 회장이 참석하는게 의미가 있다”며 “구 회장과 허 회장의 오랜 친분이 참석 기준은 아니지 않느냐”며 전경련의 변화가 우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재계 안팎에서는 전경련이 일부 핵심 간부의 사조직처럼 운영되고, 업무는 뒷전으로 돌린 채 학연과 지연을 미끼로 정치권에 줄대기를 하면서 겉으로는 ‘대외 협력’을 주장하는 일부 조직원들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크다.
창립 50주년을 맞아 전경련의 수장이 된 허 회장은 ‘재계 맏형’의 위상 강화와 전경련의 역할을 찾고, 조직 내부를 정비하기를 원하는 재계의 목소리를 귀담아 들어야 한다.
뼈를 깎는 자기 반성과 개혁 없이는 재계의 구심점 역할을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