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혁 부국장 겸 증권부장
아니나 다를까 김석동 위원장은 연초 취임사에서 “작은 물웅덩이에서 가뿐 숨을 몰아쉬는 붕어에게 필요한 것은 강물이 아니라 물 한 바가지”라며 긴급 대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더욱이 또 한명의 강경파인 권혁세 금감원장이 등장하자 직감적으로 “뭔가 큰 일을 처리하겠구나” 내심 생각했다.
예상대로 김-권 두 금융수장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저축은행 영업정지에 이어 건설사 부실 프로젝트파이낸싱(PF)에 손을 댔다. 두 수장은 최근 선배격인 5대 금융지주 회장들을 긴급 소집해 “PF를 살려 달라”고 요청했다. 구체적인 실행방안은 시중은행이 돈을 내 1조원 규모의 배드뱅크를 만드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간담회 직후 “유익한 논의를 했고 좋은 결론을 도출했다”며 만족스런 입장을 보였다.
다 좋다. 실물이건 금융이건 어느 부분이 망가지면 정부가 일정 역할을 해 나가며 해결책을 찾는 게 맞다. 그러나 국민들이 이해할 수 없고 짜증나는 건 똑 같은 행태가 반복된다는 점이다. 사태를 관망했다가 문제가 생기면 금융당국이 ‘해결사’ 가 돼 자율(自律)을 가장한 타율(他律)을 행사하는 모습을 국민들은 수없이 지켜봤다.
건설사나 저축은행 부실문제만 해도 벌써 오래전부터 문제가 있었다는 걸 알만 한 사람은 다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실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오히려 규모가 더 커진 것은 시의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했다는 방증이다. 또 자산관리공사가 갖고 있는 40조원의 구조조정기금을 사용하지 않고 민간 배드뱅크를 만들겠다는 건 공적자금을 사용하면 금융당국도 책임이 있어 이를 피하기 위한‘꼼수’라는 지적도 있다.
과거로 돌아가 보자.
지난 98년 은행장이 은행을 개인 치적(治積)용으로 활용하다 고름이 터지자 국민들에게 닦아 달라고 한 적이 있다. 당시 몇 해 전 부터 경제전문가들은 은행이‘대출 전쟁’을 펼치는 건 정도(正道)가 아니라고 무수히 경고했는데도 이를 무시하다 은행을 부실 덩어리로 만들었다. 아파트 단지마다 전단지를 뿌리고 달러까지 끌어들여 부동산 담보대출로 소진해버린 것이다. 예금은 100원 들어왔는데 대출로 140원을 써 버렸으니 위기 때 무사할 리가 없었다.
은행이 부실화 되자 국민들에게 손을 벌렸다. 그리곤 손 벌리는 게 미안했던지 임직원 연봉을 삭감하겠다고 발표했다. 대형은행의 경우 임직원 연봉 10%를 삭감하면 400~500억원을 절감할 수 있는데 이는 기업대출 한 건이 잘못되면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 있는 돈이다. 시쳇말로‘눈 가리고 아웅’만 한 것이다.
더 과거로 돌아가면 이와 비슷한 사례가 계속 있어왔다. 카드대란이 그랬고 부실기업에 대한‘밑빠진 독 물붓기 식’대출이 그랬다. 이번에 문제가 저축은행만 해도 과거에 초범이 아니다.
국민들이 화가 나는 건 돈 때문이 아니다. 편익과 비용을 분석해 보면 이득이 될 수도 손해를 볼 수 도 있다. 국민들은 경제 시스템이 건강해 진다면 어느 정도 불이익을 당할 각오가 돼 있다.
그러나 반면교사(反面敎師)의 교훈은 온데 간데 없고 때가 되면 반복되는 잘못을 보고 있자니 울화가 치민다. 이상징후가 발견됐을 때 감독을 강화하고 제도나 시스템을 손 봤다면 피해를 최소화 시킬 수 있었는데 그렇지 못했다는데 대해서 화가 난다.
PF대출로 고수익을 노리던 금융사나 무작정 지급보증을 선 건설사 등 분명 잘못을 범한 실체가 있을 텐데 마치 모두가 3자 인냥 책임은 묻지 않고 떠 넘기식 대책으로 일관하는 태도에 납득이 가질 않는다.
정부는 개입이 불가피한 상황이라면 국민들에게 솔직하게 설명하는 게 바람직하다. 금융위 관계자가 “금융당국이 은행에 대해 이래라 저래라 말할 입장이 아니다. 시중에서 얘기되는 건설업계의 어려움을 설명한 것이지 만기를 연장해 달라거나 신규대출을 해달라고 직접 요구하지 않았다”고 했다는데 이는 국민 의식을 무시한 발언이다.
어찌됐건 이미 엎질러진 물이니 잘 해결되길 바란다. 단 지금 이 순간에도 또 다른 불씨가 살아나고 있다는 생각이 기우이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