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마]말(言)못하는 말(馬)이 주는 감동

입력 2011-04-10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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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못하는 말이 스포츠의 감동을 준다

지난달 26일(토) UAE에서 개최된 ‘두바이 월드컵 클래식’ 경마대회에서 일본산 경주마 ‘빅토아르 피사(Victoire Pisa)'가 우승하자 현장에 있던 일본인 관람객들은 짧은 환호 뒤에 연신 눈물을 흘리며 감격스러워 했다.

세계 최고의 상금인 1,000만 달러가 걸린 경주에서 우승했다는 기쁨보다는 지진 피해로 고통 받고 있는 조국에 승전보를 전했다는 사실이 더욱 벅찼을 것이다.

그동안 일본은 유럽과 북미 등 경마 선진국을 따라잡기 위해 수십년간 부단히 노력해 왔지만 해외의 평가는 냉정했다. 실력도 없으면서 돈으로만 밀어붙이고 있다는 것.

그러나 일본은 차근차근 미래를 위한 장기적인 준비를 해왔고, 최근 들어 하나 둘씩 해외 유명 경주에서 입상을 하며 그 성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런 와중에 참혹한 지진 등 대재앙까지 발생했으니 일본인이 ‘두바이 월드컵 클래식’ 우승에 그토록 감격해 하는 사연을 이해 못할 것도 아니다.

사실 모든 스포츠가 그렇듯이 사람들은 자신이 응원하는 선수나 팀을 동일화한다. 국적이나 고향이 같아서 혹은 아무 이유도 없이 무작정 좋아서 응원하기도 한다. 경우야 어떠하든 동일화된 선수나 팀이 마치 내 일인 것처럼 함께 기뻐하고 함께 슬퍼한다.

이는 경마에서도 마찬가지다. 다만 대상이 사람이 아닌 동물이라는 점이 다를 뿐이다.

영화로도 개봉됐던 ‘씨비스킷(Sea Biscuit)'라는 경주마가 그렇다. 1930년대 미국 대공황 시대에 왜소한 체격과 굽은 다리를 갖은 경주마가 알콜중독자였던 기수와 함께 연전연승하는 모습에서 당시 미국인들은 희망을 발견했다. 특히, 부유한 미국 동부를 대표하는 당대의 최강마 ’워 애드미럴(War Admiral)‘에 맞서 싸우는 서부 출신의 ’씨비스킷‘은 지역을 넘어서 억눌린 서민들의 집단의식 그 자체였다.

경주마가 사람보다 더한 감동을 주는 경우는 적지 않다.

1960년대 북미 최고의 경주마였던 ‘노던댄서(Northern Dancer)'는 미국에 억눌려 변방으로 취급받던 캐나다의 자부심이었다. 미국의 주요 경마대회를 휩쓸고 은퇴 후에는 최고 교배료를 받는 씨수말이 된 ’노던댄서‘는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를 제치고 '올해의 선수'에 오르며 국민적인 영웅으로 추앙을 받았다. 2007년 4살짜리 수말인 '바바로(Barbaro)'가 경주 중 당한 부상으로 투병생활을 하자 미국 전역에서는 ‘바바로’의 완쾌를 비는 수천통의 편지와 선물이 쏟아지기도 했다.

약 8개월간의 치료에도 불구하고 안락사했지만 ‘바바로’의 이름을 딴 동물보호 펀드와 재단이 설립, 아직도 ‘바바로’를 기리고 있다. 2004년 일본에서 113연패를 기록하고 은퇴한 ‘하루우라라’라는 암말은 비록 꼴찌라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달리는 감동을 선사해, 그 일대기가 책으로 나오기도 했다.

비단 외국의 사례뿐만이 아니다. 1999년 IMF로 모든 국민이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을 때 ‘새강자’라는 국산 경주마가 쟁쟁한 외산 경주마를 제치고 우리나라 최고 권위의 ‘그랑프리’ 경주에서 우승했을 때 서울경마공원 현장은 감동의 축제였다. 또한 부경경마공원의 ‘루나’라는 경주마는 절름발이라는 치명적인 결점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실력을 발휘하며 최고의 자리에 오르는 기적을 보여줬다. ‘루나’의 감동적인 스토리는 지금 제작 중인 영화 ‘챔프(이환경 감독, 차태현 주연)’로도 이어지고 있다.

비록 말(言) 못하는 말(馬)이지만, 그 감동은 사람과 다를 바 없다. 갖은 악조건과 장애를 딛고 승자의 자리에 오른 경주마는 오히려 사람보다 더한 감동을 준다. 바로 이 때문에 경마가 ‘스포츠의 왕(King of Sports)'라고 불리는 이유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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