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입맛에 맞는 수치 제시하며 '내려라'.. 업계, "대응해봐야 득될 것 없어" 고심
기름값 인하에 대한 정부의 압박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마치 이어달리기를 하듯 장·차관들은 정유사에 대한 압박 발언의 바통을 넘기고 있다. 이에 대해 업계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에 맞서봐야 득 될 게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업계로서는 적극적인 대응도 할 수 없는 그야말로 진퇴양난이다.
15일 임종룡 기획재정부 제1 차관은 구체적인 수치를 제시하며 정유사의 기름값 인하 여지가 충분 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지난 9일 윤증현 장관의 발언에 대해 업계가 비교기준이 잘못됐다고 반박한 것에 대한 재반박이다. 하지만 임 차관이 내세운 재정부 자료를 보면 정부 입맛에 맞게 포장됐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임 차관은 지난번 정부가 보통 휘발유 대신 고급 휘발유를 OECD국가와의 휘발유가격 비교 대상을 삼은 점에 대해 설명했다.
보통 휘발유의 경우 오피넷(대한석유공사에서 제공하는 기름값 정보 인터넷 사이트)에 4개국(캐나다, 뉴질랜드, 일본, 한국) 자료 만이 제공되고 있어 국제비교로서의 유용성이 떨어지는 측면을 감안해 고급 휘발유로 구분돼 있는 22개국 자료를 비교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정유업계는 국내에서 고급 휘발유는 전체 휘발유 사용량의 1%에 그치고 있기 때문에 비교 대상으로 적절치 않다고 반박했다. 이같은 근거로 국내 휘발유가격이 국제기준보다 더 비싸다고 한 것은 이해할 수 없다는 게 업계의 입장이다.
업계는 비교 기준이 적절치 않다는 또 다른 이유도 들었다. 업계 한 관계자는“비교 대상으로 삼은 다른 나라의 휘발유 가격은 주유소 가격에서 세금을 뺀 수치고 우리나라는 정유사 공급가에서 세금을 뺀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비교 대상 국가 가운데 정유사 공급가격을 발표하는 나라는 한국 뿐이다.
또 다른 관계자는“보통 휘발유 비교 대상인 캐나다, 뉴질랜드는 우리가 가격 기준으로 삼는 싱가포르 시장가를 적용하지 않고 있으며 캐나다는 산유국”이라고 정부의 논리가 잘못됐다고 설명했다.
다른 나라보다 휘발유 가격이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는 정부 주장에 대해서도 업계는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비교 시점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달라진다는 것.
정부는 국제 유가가 최근 가장 낮았던 2008년 12월 이후 지난 1월까지 일반 휘발유 가격이 한국과 일본, 캐나다, 뉴질랜드 등 4개국 평균은 ℓ당 330원 올랐지만 우리나라는 373원 올랐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국제 유가가 최근 가장 높았던 2008년 7월부터를 기준으로 할 경우 OECD 국가의 휘발유 가격은 158원 정도 내렸지만 국내 업체들의 경우 169원 하락했다.
또한 국내 정유사 공급가격과 국제 휘발유가격(싱가포르 현물시장가격)을 2008년 12월 이후 지난해 12월까지를 비교하면 국제 휘발유가격은 386원 올랐지만 국내 휘발유 가격은 376원이 올라 국제 가격 상승분이 국내 가격 상승분 보다 높다.
업계 다른 관계자는“국제제품가 혹은 원유가 대비 대칭성은 특정 시점을 가지고 논의하는 것 보다 장기적인 추세로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대한석유협회 관계자는“현재 이같은 통계 논쟁은 무의미 하다”며“2월 말에 정부 TF팀 입장이 나오면 수용할 부분은 수용하는 등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