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톡블로그]국내 유일 증권박물관 왜 명동 아닌 일산에?

입력 2010-12-28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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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 거래소건물 소유주가 철거해

국내 유일의 증권박물관이 올해 연간 관람객이 2만명을 돌파했다고 한다.

증권박물관이 매년 두 자리수 이상의 증가율을 보이며 관심을 받고 있지만 한국은행 화폐금융박물관이 올해 연간 관람객 10만명 돌파와 비교하면 아직 관람객 수가 저조한 상태다.

현재 증권박물관은 일산 백석역 근처에 위치해 있어 유동인구가 적은데다 관람객의 접근성이 떨어져 방문객 수가 저조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관람객 2만명 돌파했다는 것은 증권박물관이 우리나라 증권 금융교육의 메카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는 것을 말해줘 뜻 깊다.

만일 증권박물관이 한국은행처럼 서울시내에 설립해 있었다면 어땠을까. 2005년 당시 그럴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한국거래소와 증권업협회(현 금융투자협회)가 외면했기 때문이라는 아쉬운 얘기도 나온다. 물론 한국예탁결제원이 2004년 증권박물관을 설립할 때도 증권유관기관들은 국내 최초 증권박물관에 큰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당시 명동에 우리나라 최초로 증권거래를 시작한 옛 대한증권거래소 건물이 있었다. 옛 증권거래소건물은 2005년 6월 등록문화재로 예고됐지만 소유주가 재산권침해 우려가 있어 이 건물을 철거해 버렸다. 당시 문화재청은 한국거래소 등에 문화재 보호를 위해 증권역사박물관으로 활용해 줄 것을 요청했지만 한국거래소와 증권업협회는 이를 외면했었다.

아쉬운 점은 당시 한국거래소와 증권업협회는 내부 유보자금으로 수천억원 이상 쌓아두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이 건물이 420억원에 경매에서 낙찰돼 철거됐던 점을 감안하면 충분히 보호할 수 있었을 것이다. 당시 이 문제와 관련해 취재할 때 예탁원측은 옛 증권거래소 건물을 증권 역사박물관으로 사용한다면 박물관을 이전할 것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는 의사를 나타냈었다.

한국금융사의 상징적인 건물이었던 옛 증권거래소 건물에 증권박물관이 이전 했다면 근대문화유산을 보호할 수도 있고 일반인들에게도 널리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놓친 것이다. 단순히 자신들의 이익과 경제적 득실을 따져 후손들에게 근대문화 유산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을 없애버린 것이다.

세월이 흘러 현재한국거래소는 방만 경영 문제와 정치적 이유로 준공공기관으로 지정됐지만 금투협은 여전히 국내에서 가장 유일한 공룡협회로 남아 국내에서 가장 돈 많은 협회 중 하나로 군림하고 있다. 최근 들어 금투협은 사회공헌의 일환으로 투자자교육에 열의를 태우고 있지만 그 열의가 2005년에 가졌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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