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牛患' 깊어가는 농가
“정부의 방역조치도 아무런 소용이 없어요. 내 새끼 같은 소·돼지 수십·수백 마리가 매일 살처분 되는 걸 보니 가슴이 아파 살 수가 없어요.”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는 구제역에 그동안 자식처럼 애지중지하며 키운 소 돼지가 독극물 주사에 죽어 나가는 것을 보면서 전국 축산 농가 곳곳에서 탄식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구제역이 경북 안동을 넘어 경기 북부와 강원도까지 확산되면서 방역 당국은 총체적 난국을 맞고 있다. 매몰 대상 우제류(소,돼지 등 발굽이 두 개달린 동물)는 이미 30만마리에 육박, 사상 최대를 기록 중이며, 특히 명품 한우로 유명한 횡성에서도 구제역이 발병해 이 지역은 초주검 상태다. 당국은 최후의 선택으로 구제역이 발생한 지역 소에 대한 예방백신 접종이라는 초강수를 뒀다.
그러나 이미 전염상태가 심각한 경북 안동시만 모든 소에 백신을 투여하고 예천, 경기 파주·고양·연천 등 5개 시군에서 제한적으로 시작, 오는 31일 끝마칠 예정이다. 예방 접종(잠정) 대상은 7016개 농장의 소 13만3000여 마리다. 소가 돼지보다 감염되기 쉽고 백신 효과가 우수해 돼지는 접종 대상에서 제외됐다.
명품 한우의 고장 횡성은 구제역이 방역망을 뚫고 들어왔다는 비보에 군전체가 패닉상태에 빠져있다. 명품한우의 명성과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평창 철원 등 강원도 지역에서 구제역이 발생하자 군병력은 물론 경찰인력과 마을 단위 의용소방대까지 동원, 모든 출입구를 소독 봉쇄하는 등 24시간 방역에 혼신의 노력을 경주했던 터라 더욱 망연자실한 상황이다.
구제역은 지방경제도 흔들 조짐이다. 구제역에 직격탄을 맞은 강원도 각 도시들은 해맞이 등 각종 연말·연시를 취소했다. 영암 여수 등 전남의 지자체들도 해넘이 등의 이벤트로 적잖은 인구가 유입될 경우 구제역 감염의 우려가 높다고 보고 행사를 취소했으며, 청원 음성 등 충북지역의 지자체들도 타종 등 각종 행사를 백지화시켰다. 구제역으로 인해
예방 접종된 소는 항체 형성기간인 2주일이 지나 백신 효과 유무에 따라 추가 백신 접종여부를 결정한다. 백신 효과가 나타나는 소는 매몰처리를 하지 않으며 전문가의 정밀 검사 후 안전하다는 판단이 내려지면 도축이 진행된다. 백신 효과가 없는 소는 1개월 후 2차 접종을 실시한다.
다만 예방접종이 실시되는 지역에서 접종전이나 접종 후 구제역이 발생했을 경우에는 종전대로 발생농장과 반경 500m 내의 가축에 대해 살처분 해야 한다.이에 따라 정부는 백신 접종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농림수산식품부 고위 관계자는 “작업에 동원됐던 사람들 중 일부가 예방 접종팀에 합류했다”며 “이들은 매몰 처분이 끝나고 소독 후 5일간 격리 조치돼 안전에는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예방접종은 공무원, 공중방역 수의사 등 총 200개팀 800여명을 구성됐으며 접종 지역으로 결졍된 5개 지역별로 교육을 받고 현장에 투입됐다. 그러나 구제역 확산이 예견됐음에도 초기대응을 서두르지 않는 등 정부의 뒤늦은 대응에 대한 비난 여론은 누그러들지 않고 있다. 실제로 지난달 28일 최초 신고로 접수된 경북 안동시 와룡면 서현리 돼지 농장은 5일 전인 23일에 당국에 신고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안동의 경우 구제역이 역대 처음 발생한 지역이기 때문에 살처분 경험이 부족한 인력을 매몰 작업에 투입해 방역 대응은 더욱 늦어졌다. 농식품부는 구제역 확산을 막기 위해 축산농가에 철저한 소독을 하라고 당부했지만 구제역이 발생한 인근 지역에는 소독 물품이 뒤늦게 전달됐으며 소독약 사용 방법도 주민들에게 가르쳐 주지 않아 제대로 된 방역이 초기에 이뤄지지 않았다.
이로써 지난달 29일 경북 안동에서 처음으로 구제역이 발생된 것을 포함해 27일 현재까지 총 82건의 구제역 의심신고가 접수됐으며 이 중 56건이 양성판정을, 26건이 음성판정 받았다.
매몰 대상 가축은 2059개 농장 44만3442마리로 계속해서 최대치를 경신중이다.
이 중 1931개 농장 40만4921마리가 살처분 처리돼 91.3%가 완료됐다. 구제역이 발생한 가축이 섭취한 사료나 접촉 가능성이 있는 짚풀 등의 잔존물 처리는 2002개 농장 중 1295개 농장에서 처리를 완료해 64.7%가 진행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