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다발 Tu-154기, 이륙 직후 엔진 3개 모두 고장
러시아의 악명높은 사고 다발 기종 여객기 투폴레프(Tu)-154기가 또 사고를 일으켰다.
5일 외신 등에 따르면 승객과 승무원 172명을 태운 러시아 남부 자치공화국 다게스탄 항공사 소속 Tu-154 여객기가 4일 오후 이륙 20여 분만에 엔진 고장을 일으켜 비상착륙을 시도하다 활주로를 벗어나 근처 언덕에 부딪히면서 동체가 두 동강 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승객 2명이 사망하고 83명이 부상했다고 러시아 보건사회발전부가 밝혔다.
사고 여객기는 이날 오후 2시쯤 모스크바 남서쪽 외곽의 브누코보 공항을 출발해 다게스탄 공화국 수도 마하치칼라로 향했다. 하지만 이륙후 20여 분만에 엔진 3개와 제너레이터, 위성항법장치 등이 모두 작동을 멈췄다.
러시아 항공청 관계자는 현지 언론에 "여객기가 9천100m 고도에 이르렀을 때 3개의 엔진이 모두 멈춘 것은 물론 제너레이터와 내비게이션 시스템도 작동을 멈췄다"고 전했다.
인테르팍스 통신은 "조종사가 오후 2시 20분쯤 엔진에 이상이 있다고 처음 보고하고 나서 2분 뒤 다시 모든 엔진과 제너레이터, 내비게이션 시스템이 작동을 멈췄다고 관제탑에 알려왔다"고 보도했다.
이에 조종사는 곧바로 관제탑에 비상착륙을 요청했고 이미 출발 공항인 브누코보를 80km 이상 벗어난 상황에서 회항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관제탑은 인근 지역의 다른 공항인 도모데도보에 착륙할 것을 지시했다.
조종사는 관제탑과의 교신을 통해 착륙 지점에 대한 조언을 받으면서 고도를 낮춰갔으나 내비게이션 시스템이 멈춘데다 기상상황까지 나빠 정확히 활주로에 들어서지 못했다.
결국 활주로를 벗어난 여객기는 미끄러지면서 안전선을 넘어 근처의 작은 언덕에 충돌했고 곧이어 동체가 두 동강이 나고 말았다.
엔진이 고장을 일으킨 원인에 대해서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고도 1만m 위치에서 엔진이 모두 멈췄음에도 대형 사고가 발생하지 않은 것은 조종사의 침착한 대응과 뛰어난 조종술이 큰 역할을 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러시아 조종사 노조위원장 미로슬라프 보이축은 리아노보스티 통신과의 회견에서 "사고기가 비상 착륙에 성공한 것은 기적에 가깝다"며 "만일 이와 비슷한 종류의 여객기 엔진이 그처럼 높은 고도에서 모두 멈춰버리면 기껏해야 120km 정도를 날 수 있으며 이때는 고도의 조종 기술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전문가도 "엔진 3개가 모두 멈춘 상태에서 그처럼 높은 고도에서 무사히 착륙했다는 얘기는 처음 들어 본다"고 말했다.
한 승객은 "15m만 더 밀려갔으면 비행기가 담장에 충돌하면서 그 충격이 모두 승객들에게로 전해져 왔을 것"이라며 "우리는 운이 좋았다"고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1960년대 처음 생산돼 1970년대부터 본격 상업 운항에 들어간 Tu-154기는 이미 1990년대 말 생산이 중단된 노후 기종이다. 러시아에서도 각종 사고가 잦아 승객들로부터 기피 기종 1호로 통한다.
올해 4월 러시아 서부에서 추락해 레흐 카친스키 폴란드 대통령을 비롯한 승객 96명이 모두 사망했던 사고기도 Tu-154기종이었다.
러시아 국영항공사 아에로플로트는 Tu-154의 안전문제를 고려, 최근 이 기종을 모든 노선에서 퇴출시켰다. 하지만 러시아 일부 지역과 옛 소련 지역에선 여전히 주력 여객기로 이용되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