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그룹 비자금 의혹을 파헤치는 서울서부지검 형사5부(이원곤 부장검사)가 지난 24일 김승연 회장에게 소환을 전격 통보함에 따라 앞으로의 수사방향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
하지만 검찰은 애초 김 회장이 거액의 비자금을 조성해 정관계 로비를 벌였다는 의혹에 주목해 두달 넘게 고강도 수사를 벌였으나, 비자금 조성 경위와 용처는 제대로 못 밝혀낸 것으로 알려져 이번 수사가 ‘용두사미’로 끝날 개연성이 크다는 게 검찰 안팎의 관측이다.
검찰은 이번에 김 회장을 불러 2005년께 유통 협력사인 ‘한유통’과 제약 계열사 드림파마의 물류 사업부문인 웰로스(옛 명칭: 콜럼버스)가 부실화한 이후 다른 계열사를 시켜 수천억원을 부당 지원했다는 의혹을 집중적으로 조사할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면 그룹 계열사에 수천억원의 손실을 떠안겨 업무상 배임 혐의가 성립된다.
검찰은 구제를 받은 웰로스가 김 회장 누나가 대주주로 있는 코스피 상장사 ‘한익스프레스’의 주가를 대폭 끌어올리는 데 기여했다는 소문에도 주목하고 있다.
한익스프레스는 화공약품 등 각종 기업용 화물을 취급하는 물류회사로, 약품과 건강식품 배송에 특화된 웰로스를 지난 2월 인수하면서 주가가 1년 사이 배 가까이 뛰었다.
검찰은 이 과정에서 김 회장 측이 한익스프레스측 가치를 높여주며 이익을 챙겼는지 등을 조사하고자 한익스프레스와 드림파마를 압수수색해 관련자료를 정밀 분석해왔다.
하지만 검찰의 이 같은 마무리 수순은 애초 한화 측의 비자금 의혹을 놓고 벌여온 저인망식 고강도 수사를 놓고 볼 때 당초 기대치와는 거리가 있다는 지적을 받는다.
한화그룹 비자금 의혹은 한화증권의 한 과장급 간부가 ‘용처가 수상한 수백억원의 차명자산이 있다’며 올해 초 금융감독원에 신고하며 불거졌다.
이에 따라 검찰은 한화 측이 2002년 대한생명 인수를 위해 로비를 벌였던 것처럼 비자금을 정관계 고위직에 뿌렸을 수도 있다는 의혹 등을 규명하고자 지난 9월16일 서울 그룹 본사를 전격 압수수색하며 수사를 본격화했다.
검찰은 ‘비자금의 성격과 조성경위를 밝히고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지를 밝혀낼 방침’이라고 누차 강조한 바 있다.
그러나 드림파마와 한익스프레스 등 계열사와 협력사 10여곳을 뒤지고 금춘수 경영기획실장과 홍동옥 전 투자 담당 부사장 등 전ㆍ현직 그룹고위층을 줄줄이 불러 조사했지만 검은 비자금의 자세한 조성 경위와 용처와 관련해 제대로 된 단서를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한화증권에서 차명계좌로 관리되던 자산 수백억원을 발견했지만, 한화 측은 “선대에서 내려온 미신고 유산”이라며 로비자금설(說)을 완강하게 부인하는 상태다.
이에 따라 검찰이 각종 의혹의 정점인 김 회장을 이번에 소환하더라도 비자금의 실체와 정관계 로비의혹을 밝히겠다는 당초 의지와 달리 김 회장의 배임 혐의와 비공개 상속이나 증여 등에 대해서만 공방을 벌일 공산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