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종용·김징완·허태학 등 5년 이상 장기 집권 CEO도 있어
연말을 맞는 삼성맨들의 심경은 복잡하다.
그룹이 최근 컨트롤타워를 복원시키겠다고 발표하고, 이학수·김인주 등 과거 삼성그룹의 핵심 참모역할을 맡았던 구조조정본부 인사들이 모두 계열사 고문으로 물러나는 등 세대교체가 현실화됐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삼성그룹 주요 계열사 대표이사들도 연말 인사에서 대폭 물갈이가 될 것인 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삼성 계열사의 한 임원은 “연말 인사철은 항상 긴장되기 마련”이라며 “올해는 이건희 회장의 그룹 쇄신 의지가 강해 그 어느 때보다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하지만 40대 초반의 한 임원은 “젊은 조직론이 창의성과 조직의 활기를 불어넣는다는 의미의 젊음이라고는 하지만, 연령대가 낮아질 것이라는 기대감을 감출 수는 없다”며 “비교적 나이가 젊은 임원들은 이번 인사에 많은 기대를 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삼성그룹의 최근 인사를 살펴보면 대표이사의 경우 평균 4년 이상 재직한 점에 비춰볼 때 지난해 새롭게 CEO에 오른 인물들은 이번 인사 후폭풍의 영향권에서 벗어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삼성그룹이 지난 2008년과 2009년 연이어 젊은 세대를 기용한 데 이어 다시 세대교체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돼 60세 내외의 CEO와 임기가 만료되는 CEO들은 ‘좌불안석’일 수 밖에 없다.
이에 본지는 최근 10년간 삼성전자, 물산, 에버랜드, 생명 등 삼성그룹 주요 계열사 대표이사들의 평균 재임기간 등을 분석했다.
삼성 주요 계열사 CEO의 평균 재임기간은 4.8년인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일반적으로 대표이사 임기가 3년인 점을 감안할 때 재선임된 후 두번째 임기를 다 채우지 못했음을 뜻한다.
그룹 주력 계열사인 삼성전자의 경우 윤종용 상임고문이 8년여간 장기집권 했으며 이후 이윤우 부회장에게 바통을 넘겼다. 지난해부터는 이윤우 부회장과 최지성 사장이 삼성전자를 이끌고 있다.
한때 그룹 주축인력의 산실이었던 제일모직의 경우 안복현 사장과 제진훈 사장이 각각 5년 가량 제일모직을 이끌었고, 지난해부터 황백 대표가 제일모직 대표이사로 재직 중이다.
금융계열사인 삼성생명과 삼성카드의 경우 비교적 한 명이 오랜 기간동안 CEO로 재직했다.
국내 최대 생명보험사인 삼성생명은 배정충 전 대표가 지난 1999년부터 2006년까지 대표이사로 재직한 뒤, 이수창 대표가 현재까지 삼성생명을 이끌고 있다,
삼성카드의 경우에도 이경우, 유석렬 대표가 각각 6년씩 회사 경영을 맡았으며 삼성전자 CFO(재무최고책임자) 출신인 최도석 부회장이 지난해 3월부터 삼성카드의 수장이 됐다.
허태학 전 대표는 에버랜드 외에도 호텔신라, 삼성석유화학 대표 등을 역임하는 등 삼성 3세 경영권 승계작업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기도 했다.
◇ 삼성 CEO, 서울대 출신 장악
이번 조사결과, 삼성그룹 주요 계열사들의 CEO는 서울대 출신이 압도적으로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전자, 삼성물산 등 8개 계열사의 최근 10년간 CEO로 재직한 사람은 모두 27명. 그룹 핵심 계열사인 삼성전자의 윤종용, 이윤우, 최지성 대표 등은 모두 서울대를 나왔으며, 이들을 포함해 서울대 출신이 14명으로 전체의 절반을 넘겼다.
또 이른바 ‘SKY(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등 상위권 대학출신까지 합하면 18명으로 66.6%에 해당한다.
삼성그룹의 인사가 ‘철저한 성과주의’라고 하지만, 주요 대학 출신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전체의 3분의 2를 차지했다.
삼성 계열사의 K 임원은 “CEO까지 올라가기 위해 부장, 상무, 전무 등을 거치는 데 이 과정에 서울대를 비롯한 주요 대학 출신들이 포진해 있어 실질적으로 명문대학 출신들이 최고경영진까지 올라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에는 이같은 경향이 훨씬 뚜렷했지만 점차 특정 대학 출신 선호도가 낮아지는 추세이기 때문에 ‘삼성의 미래는 밝다’라고 삼성 내외부에서 평가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 윤종용·김징완 등 장수 CEO로 꼽혀
본지의 분석대상기업 CEO들 중에는 평균 재임기간을 훨씬 상회하는 CEO들도 눈에 띄었다.
대표적인 인물이 삼성전자를 글로벌 기업으로 육성시키는 데 일익을 담당했던 윤종용(66) 삼성전자 상임고문.
윤 고문은 뉴 밀레니엄 시대를 맞은 2000년 삼성전자 대표이사로 취임한 이후 지난 2008년 4월 이건희 당시 삼성그룹 회장이 퇴진을 발표할 때까지 8년 4개월 간 삼성전자의 대표이사로 재직했다.
윤 고문은 당시 ‘애니콜 신화’의 이기태 부회장, ‘황의 법칙’의 황창규 사장 등 국내 전자산업을 세계무대의 반열에 올려놓았던 인물들과 함께 삼성전자를 이끌며 삼성전자의 ‘르네상스’를 이끌었다. 삼성전자가 최근 사상 최대실적을 올릴 수 있는 기반도 이 때 닦아놓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또 다른 대표 장수 CEO로는 김징완(64) 삼성중공업 부회장을 들 수 있다. 김 부회장은 지난 2001년 3월부터 삼성중공업 대표이사로 재직하면서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이 이끌던 국내 조선업계에 ‘빅3’ 구도를 형성했으며, 최근에는 수주잔량 기준으로 업계 1위를 기록하는 등 성과를 거두었다.
김 부회장은 지난 3월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날 때까지 9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삼성중공업을 이끌었다.
특히 김 부회장은 선박 제조에 그치지 않고 특수선과 해양플랜트 분야에서 삼성중공업이 글로벌 선두기업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일등공신으로 꼽힌다.
이와 함께 이상대 전 삼성물산 부회장과 허태학 에버랜드 사장도 대표적인 장수 CEO로 꼽힌다.
이상대 부회장은 지난 2002년 이후 7년 11개월 동안 삼성그룹의 모태기업인 삼성물산을 이끌었다. 또 이부진 호텔신라 전무의 ‘멘토’로 알려진 허 사장은 지난 1993년부터 에버랜드 전신인 중앙개발 대표이사를 맡아 10년 가까이 에버랜드와 호텔신라, 삼성석유화학 등의 대표이사를 지냈다.
이상대 전 부회장도 삼성그룹의 건설부문을 책임지며 2002년부터 지난해까지 삼성물산을 이끈 장수 CEO로 꼽힌다.
이에 반해 비교적 짧은 기간만 CEO를 역임한 인물들은 삼성물산 CEO들이 많았다.
배종렬 전 대표는 지난 2001년부터 2004년까지 2년 10개월동안 대표직을 수행했으며, 송용로 삼성물산 건설부문 대표도 지난 1999년 12월부터 2002년 1월까지 2년11개월의 임기를 수행, 비교적 단명(?)한 CEO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