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 차입금 4조원 조달이 본계약 체결 관건
현대그룹이 현대건설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며 그룹의 위상이 크게 달라졌다. 재계 순위에서도 현대그룹은 재계 21위에서 현대건설 인수 후 자산 규모 22조3000억원, 매출액 21조4000억원으로 14위(공기업 제외)로 단숨에 도약해 과거 현대그룹의 위상을 어느 정도 회복하게 됐다. 무엇보다 그룹 임직원들의 자부심은 계량화하기 어려운 자산이 됐다.
◇ 자금 조달이 첫 과제=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데 대해 “고 정주영, 정몽헌 두 선대 회장이 만들고 발전시킨 현대건설을 되찾은 만큼, 현대그룹의 적통성을 세우고 옛 영광을 재건할 수 있도록 현대건설 임직원 모두와 함께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대건설 인수 자금 확보는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다.
현대그룹이 현대건설 인수가격으로 5조5000억원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져 시장의 평가보다 1조5000억원이 많다. 현대건설의 기업가치 외에 현대그룹 전체의 경영권 안정 측면과 연결돼 있다는 점에서 현대그룹으로서는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할 수 있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현대그룹의 현재 상황으로는 과다한 부담이라는 평가가 우세하다. 자칫 금호아시아나그룹이 대우선설 인수에 따른 재정적 부담을 견디지 못해 경영위기를 겪었듯 현대그룹 역시 ‘승자의 저주’에서 벗어나지 못할 수 있다고 우려하는 것이다.
실제로 현대그룹의 현금성 자산은 약 1조5000억원 정도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나머지 4조원 가량은 외부 차입금을 통해 충당해야 하는데 어떤 조건으로 조달하느냐가 관건이다.
현대그룹은 동양종합금융증권, 프랑스 나타시스은행 등을 재무적 투자자(FI)로 유치해 1조9000억원 정도를 충당하고, 계열사인 현대상선, 현대엘리베이터, 현대증권을 통해 2조2000억 가량을 조달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지난 2006년 금호그룹은 치열한 경쟁을 뚫고 대우건설 인수에 성공하며 재계 순위 10위권으로 진입하는 듯했지만 재무적 투자자에게 과도한 보상을 약속한 것에 발목이 잡혀 결국 그룹 전체가 워크아웃을 초래했다.
현대그룹 측은 “채권단과의 비밀조약이 있어 현재 구체적으로 밝힐 수 있는 부분이 없다”며 “다만 그룹 위상이나 규모를 고려해 무리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자금 조달계획을 제출해 자금 조달에는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현대건설의 미래는= 현대그룹은 현대건설을 글로벌 건설 및 엔지니어링 업체로 육성하겠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현대그룹이 현대건설을 앞세워 다시 대북사업을 확대하려고 한다면 현대건설의 몰락이라는 과거의 전철을 밟을 수도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현대그룹 관계자는 “이 부분은 정부 정책과도 관련이 되는 부분이기 때문에 현재 우리로서는 답할 수 없다”면서도 “대북사업은 (현정은) 회장님이 적극 장려하고자 하는 부분도 있고 향후 그룹차원에서 적극 추진을 고려해 볼 만한 사업이지 않겠느냐”고 말해 현대건설의 대북사업 참여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와함께 현대건설 노조를 설득하는 일도 현정은 회장으로서는 풀어야 할 숙제다. 현대건설 노조는 17일 주요 일간지를 통해 광고를 게재하고 “채권단은 현대건설 매각에 있어 비가격 요소 반영을 높이겠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지만 결국 우려하던 가격을 기준으로 결정하는 결과가 되고 말았다”며 “우리는 대우건설의 잘못된 M&A를 답습하지 말아야 한다는 입장을 천명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채권단의 고가 최우선 매각 기준이 그대로 반영되고 말았다”며 비난했다.
또한 노조는 “채권단의 매각 기준과 결정 방법 등의 세부적 사항을 발표하지 않으면 실사를 총력 저지할 것”이라고 밝혀 향후 정밀 실사가 무난히 이뤄질 수 있을 지도 우려된다.
현대건설 노조 측은 현대그룹이 현대건설과 현대엔지니어링의 현금성 자산 2조원 가량을 현대건설의 미래를 위해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현대건설을 인수하기 위해 무리하게 끌어들인 단기 외부 차입금을 갚는데 사용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현대그룹 관계자는 “현대건설 자산 매각은 전혀 없을 것”이라며 “시장의 루머처럼 ‘승자의 저주’는 결코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아직 현대건설 인수가 끝난 것이 아니다”라며 “현 시점에서 미래를 말하기에는 아직 이른 단계”라고 덧붙였다.
현정은 회장의 시장의 전망을 비웃듯 현대건설 인수후보자격을 따냈듯 산적한 난제를 어떻게 풀어 나갈 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