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말, 당시 미분양이던 대구의 D아파트에 전세계약을 맺고 거주하던 김광세(37)씨는 얼마 전 건설사로부터 계약을 해지하겠다는 통보를 받고 고민에 빠졌다. 분양을 받기엔 자금이 없어 이사를 가려고 알아보니 현재 보증금으로는 갈 곳이 없다.
건설사들이 분양침체로 인한 피해를 줄이기 위해 전세로 내놨던 미분양 아파트의 계약 만기일이 도래하면서 해당 아파트에 살고 있는 세입자들의 근심이 늘고 있다.
17일 시장에 따르면 건설사들은 기존에 분양침체를 피해 전세로 내놨던 미분양 아파트의 전세계약 만기일이 도래하자 서둘러 분양으로 전환하는 분위기다. 최근 분양시장이 살아나고 있는 걸로 볼때 충분히 수요가 따를 것이란 판단에서다.
이러한 현상은 2008부터 미분양 아파트의 전세 전환이 활발히 진행됐던 대구지역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대구 부동산중개업소에서는 전세기간이 종료되는 미분양 아파트는 내년 상반기까지 5300여 가구 정도로 추산하고 있다.
최근 대림산업은 2008년 전세를 놨던 대구시 달서구 성당동·월성동, 북구 칠곡 등 미분양 아파트의 전세 만기분에 대해 분양 전환을 감행하기로 했다. 롯데건설도 달서구 본리동 롯데캐슬아파트의 전세계약을 모두 해지하고 분양 전환하기로 확정했다.
2년 전만 해도 대구지역 85㎡ 아파트 기준 전세 보증금은 1억원 미만이었다. 더욱이 미분양 전세의 경우 시세보다 10~15% 정도 저렴한 8000~9000만원대의 가격에 제공됐었다.
하지만 지금은 전세난으로 인해 비슷한 평형대 아파트의 전세 보증금이 1억5000만원 안팎까지 뛰어올라 이사를 가더라도 5000만원 이상을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다.
다음달 분양 전환 예정인 아파트에서 살고 있는 세입자 유모씨(35)는 “전세를 구하려니 돈이 부족해 근처 빌라를 알아보고 있다. 이런 상황을 예측 못한 것은 아니지만 단기간에 전셋값이 너무 올라서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세입자들의 이같은 사정을 모를리 없는 건설사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는 입장이다. 미분양 적체로 인한 영업손실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세입자의 처지까지 헤아릴 틈이 없기 때문이다. 대형건설사 한 관계자는 “2년 전에 비해 경기가 많이 회복됐기 때문에 분양 전환 후 결과 기대를 걸고 있다”며 “당시 전세계약자 중에는 2년간 살아보고 분양 여부를 결정하려는 분들이 상당했었던 걸로 안다. 기존 세입자의 경우 할인된 가격에 분양을 받을 수 있으니 내집마련의 기회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