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스 금리불구 시중자금 몰려
은행·보험사 및 여신전문금융사 등 주요 금융사들이 밀려드는 시중자금으로 인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실질금리가 마이너스인 상태에서도 단기자금은 물론 장기자금인 정기예금에 시중자금이 몰리고 있지만 마땅한 운용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4일 금융권에 따르면 저금리 기조가 지속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은행 정기예금과 수시입출금식예금(MMF·MMDA) 등으로 자금이 몰리고 있다. MMF의 경우 지난 9월 5000억원 감소에서 10월에는 오히려 1조1000억원 증가로 돌아서면서 5개월 만에 가장 크게 늘어났다.
국민·신한·우리은행 등 3대 시중은행의 총수신은 지난달 말 현재 494조5813억원으로 전월말보다 13조9187억원 급증했다. 시중은행의 총수신이 석 달 만에 증가세로 돌아선 것으로, 증가액 면에서는 지난 2월의 17조5294억원 이후 8개월 만에 최고 수준이다.
저원가성 예금인 요구불예금은 133조8642억원으로 3조4719억원 늘어나면서 넉 달 만에 증가세로 전환됐다. 정기예금은 은행들의 예금금리 인하에도 불구하고 281조3788억원으로 8조4857억원 급증했다. 증가액은 8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하지만 서울과 수도권 부동산 시장이 여전히 얼어붙어 있는데다 1900선을 넘어선 주가가 연내 2000선을 돌파할 것이라는 확신이 부족한 상황이어서 증시와 부동산 등으로 자금이 이동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펀드 잔액은 주가 강세에도 불구하고 감소세로 돌아섰다. 그동안 주가 약세에 따른 대규모 투자 손실로 펀드 환매를 하지 못하던 투자자들이 최근 주가 상승기를 틈타 펀드를 대거 환매했기 때문으로 관측된다. 오히려 펀드 환매자금 등이 시중은행으로 몰리고 있는 상황이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자금이 은행을 중심으로 몰려들고 있다”면서 “특히 많은 기업들이 적절한 투자처를 찾지 못해 수시입출금식 예금(MMDA)에 돈을 맡기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반면 은행들은 자금운용 측면에서 특별한 투자대안이 보이지 않아 ‘돈이 넘쳐서 고민’인 상황이다. 일부 시중은행들은 자산 중 고수익 위험자산 편입 비중을 다소 늘려서라도 정적 수익을 남기는 방안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한 시중은행 고위 관계자는 “시중금리가 하락하고 있는 상황에서 은행들은 정부의 예대율 규제를 지키기 위해 예금 유치를 적극적으로 펼쳐왔다”면서 “하지만 고객이 예금을 유지할 수 있는 금리를 제시하기 위한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하면서 고금리의 위험자산 편입비중을 높이는 방안을 고민할 수 밖에 없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사정은 저축은행 역시 비슷한 것으로 전해졌다. 저축은행의 경우 여유자금을 저축은행중앙회가 운용하는 일반예탁금으로 돌리고 있지만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는 것이다. 금융당국이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및 선박금융 등 고위험 유가증권에 대한 투자 제한에 나서면서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험업계도 최근 자산 규모 경쟁이 치열해 지면서 ‘낮은 보험료, 높은 보장’을 앞세운 신상품들을 잇따라 내놓고 있는데 이 같은 상품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는 보다 높은 수익을 내는 고금리 위험 자산에 대한 투자 비중을 높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자금이 몰려들면서 유동성 걱정은 해소됐지만 기업의 대출 건수가 줄어든데다 예대율 규제, PF 투자제한 등으로 인해 금융사들이 마땅한 자금운용처를 찾지 못한 채 한숨만 쉬고 있는 상황”이라며 “최근 원화강세에 따른 외화자금도 크게 늘어 났지만 정부의 선물환 규제 등으로 인해 이를 어떻게 운영해야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