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자 베스트리드 리미티드 회장
대우 성장 그림자 보필하며 미술학도로서의 꿈 간직
아트선재미술관서 꽃 피워
사라져간 대우그룹처럼 세인들에게 점차 잊혀져가
재벌가에게 있어 ‘여풍’은 그 배경에 재벌이라는 수식이 서려있을 때 비로서 존재의 당위성을 지닌다. 그래야만 당당하되 부끄럽지 않은 여풍으로 파장을 불러올 수 있다.
이런 면에서 전 대우그룹의 여풍은 그룹 해체 이후 10여년 동안 잔잔한 미풍으로 남아있다. 이제는 기억 속에서 사라진 ‘대우’라는 이름도 재계 한켠으로 조금씩 사라져가고 있다. 그리고 그 기억 너머에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부인 정희자 여사가 남아있다.
◇ 재계 순위 2위 노리던 거대 그룹의 붕괴=지난 1990년대말 대우그룹은 외환위기를 맞아 무너지기 시작했다. 무역과 건설 부문이 분리돼 대우인터내셔널과 대우건설로 양분됐고 대우자동차는 GM대우로 이름과 주인이 바뀌었다. 대우증권과 중공업, 조선해양, 자동차판매 등 재계 순위 2위를 넘보던 거대그룹 계열사들은 모두 흩어져 채권단의 품으로 넘어갔다.
대우그룹은 지난 1967년 대우실업㈜으로 출범해 수출시장 확대에 따라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했다. 1982년 해외건설의 확대 및 수주 대형화를 위해 대우개발을 흡수합병하면서 ㈜대우로 거듭났다. 대우그룹의 전성기가 시작된 것이다.
1990년대 들어 그룹 총수인 김우중 회장은 ‘세계경영’을 내세우며 글로벌 시장으로 대대적인 확장에 나섰다.
그러나 1999년 8월 대우사태로 대우계열사가 워크아웃 대상기업으로 지정돼 기업개선작업에 돌입한다. 2000년 12월 각 계열사는 분할등기를 마친 직후 영업활동이 정지되기도 했다.
이렇듯 거대 그룹은 한 순간에 무너져 내렸다. 수많은 대우맨들이 회사를 떠나면서도 김 전 회장을 걱정했다. 적어도 대우맨들에게 김 회장은 우상이나 다름없었다.
◇“힐튼호텔 앞에 현대차 용납 못해”=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은 지난 3월 대우그룹 43주년을 기념해 공식석상에 얼굴을 내비쳤다. 당시 대우인회 정기총회 참석 여부 및 경영복귀 여부가 재계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김 전 회장은 경영복귀의 여운 만을 남긴 채 행사후 곧 바로 중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부인 정희자 여사도 함께였다.
기념식이 치러진 날 정 여사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김 회장님이 칠십 중반을 넘어섰지만 여전히 해야 할 일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여전히 동남아와 유럽 쪽에서 자문을 요청하는 곳이 아직도 많다. 직접적인 사업은 없지만 자문이라든가 허가 등 어려운 것의 일들의 길을 뚫어주는 역할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정 여사의 언급처럼 올 봄에 대우그룹은 작지만 부활의 날개짓을 치는 듯 했다. 지난 5월 국내 M&A시장의 대어로 꼽혔던 대우인터내셔널 인수전에서 지한 글로벌이 유력한 후보로 급부상한 것이다.
지한 글로벌은 김우일 옛 대우그룹 구조본부장을 주축으로 한 컨소시엄이다. 옛 대우그룹의 주축이었던 대우인터내셔널 인수에 뛰어들면서 대우그룹의 부활설이 세간의 관심을 끌기도 했다. 쌍용차 M&A에서는 지한 글로벌이 최초 의향서(LOI) 제출 기업 명단에 올랐으나 후보군에서 탈락했다.
이런 옛 대우그룹의 움직임과 함께 정희자 여사의 행보도 여전했다. 한때 힐튼호텔의 경영을 맡았던 그녀는 김우중 회장 못지않은 뚝심을 지닌 것으로 회자되고 있다.
그녀를 기억하고 있는 옛 대우 관계자는 “한때 힐튼호텔 로비 앞에는 현대차의 쏘나타나 그랜저를 볼 수 없었다. 호텔 고객이 타고 온 현대차와 기아차는 절대 로비 주차장을 이용할 수 없었다”고 말한다.
대우그룹 소속의 힐튼 호텔 앞은 대우 프린스와 로얄 살롱 등 대우차를 위한 자리였다. 행여 힐튼호텔 앞에 현대차가 주차하고 있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고 했다. 발견 즉시 정 여사의 불호령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재벌가 비운의 여풍으로 남아=이러한 뚝심으로 김 전 회장을 내조한 정 여사는 재계에서 ‘비운의 여인’으로 통한다. 남편인 김 전 회장 사이에 3남 1녀를 뒀던 그녀는 장녀인 김선정 씨를 비롯해 김선재, 김선협, 김선용 씨 등을 슬하에 뒀다. 이 가운데 김선정 씨가 김상범 이수그룹 회장 부인이자 미술전문 기획사 사무소(SAMUSO) 대표다.
유력인사의 딸로 태어나 재벌가 안주인이 된 김선정 대표는 국제 미디어아트(디지털아트와 혼용) 행사를 주도하며 어머니의 문화에 대한 열정, 미술계에 미치는 영향력 등을 고스란히 이어받았다.
정 여사의 인생에 있어 장남 선재씨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선재씨는 지난 1990년 미국 보스턴대학 유학 중에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정 여사는 자기보다 앞서 세상을 뜬 아들 선재 씨를 기리기 위해 서울과 경주 보문단지에 각각 선재미술관을 세웠다.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이 귀한 아들을 먼저 떠나보낸 이듬해였다. 같은 맥락으로 2003년 서울 종로에 선재아트센터를 세우기도 했다.
정 여사의 지인에 따르면 경주선재미술관 로비에는 아들을 기리는 전신 유화가 몇해 전까지 걸려있었다고 한다. 미술관 관계자에 따르면 “정희자 여사는 지금은 선재미술관장의 직책을 맡지 않고 있다”면서 “1년에 한 두번 정도 손님들과 잠깐씩 미술관에 들리는 수준”이라며 그녀의 근황을 전했다.
또한 아들 故김선재 씨의 유화는 “지극히 개인적인 소장품인 관계로 현재는 경주선재아트센터의 별도 보관고로 자리를 옮겼다”는 말을 덧붙였다.
한양대 건축과 출신의 정 여사는 홍익대 미술대학원석사를 거쳐 이후 하버드 동양미술사 수학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대우그룹 성장에 보이지 않는 힘을 더해 온 그녀의 의지 뒤에는 미술학도로서의 꿈과 인생도 서려있다.
정 여사는 지난해 1월부터 검찰의 김 전 회장 추징금 집행 과정에서 번번이 수사 대상에 오르기도 했다. 자신이 운영하는 아트선재미술관에 보관돼 있던 미술품 등을 검찰이 압수하자 지난해 1월 “압류된 유명 미술품들을 돌려 달라”며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가 곧 바로 취하하기도 했다.
◇호텔 및 부동산임대 법인에 이름 올려=정 여사는 지난해 말 현재 자본금 850억원인 베스트리드 리미티드 코리아 회장이란 직책을 맡고 있다. 1976년 관광호텔업 및 부동산임대업 등을 목적으로 설립된 이후 서울과 경주 힐튼호텔의 관리경영을 맡아온 회사다.지난 2006년 베스트리드 그룹에 주식의 90.42%를 양도했고 정 여사는 회사의 회장 직을 맡고있다.
베스트리드 리미티드 코리아는 경기도 포천의 아도니스 골프장 지분의 18.6% 보유하고 있다. 이곳은 둘째 아들 선협 씨가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재계 일각에서는 아도니스 CC와 베스트리드 리미티드 코리아가 각각 A1 컨트리클럽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A1 컨트리클럽은 경남 거제에 자리한 ‘로이젠’ 골프클럽 부지에 대한 지분을 소유하고 있고, 부지 일부가 대우조선해양과 대우건설의 임원 명의로 돼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김우중 전 회장의 예전 측근들이 여전히 김 회장과 정 여사의 주변에 머무르며 김 전 회장 일가를 보필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흘러나오고 있다.
정희자 여사를 비롯한 옛 대우그룹의 여풍은 여느 재벌가의 여인들과는 분명히 다른 길을 걷고 있다. 한때 대한민국의 재계 순위 2위를 넘보던 거대 대우그룹은 희미한 기억 속의 이름 만 남았고, 정희자 여사의 발자취도 그만큼 옅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