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후 손님줄어 “IMF보다 더 어려워”
지난 달 31일 서울 강북구 수유시장 내 옷가게에서는 점원이 문을 열기 전 진열되어 있는 옷의 먼지를 테이프를 이용해 제거하고 있었다. 점원 이상아(28·가명)씨는 “손님이 너무 없어서 옷에 먼지가 쌓였다”고 말했다. 이 씨는 “추석 연휴 이후 계속 손님이 없었다”며 “이대로 가다가는 한 달 내로 문을 닫을 판”이라고 말했다.
서민들의 지갑 사정을 더 확실하게 보여주는 곳은 채소 가게였다. 채소를 찾는 손님들은 많았지만 배추 한 포기 가격을 물어보고는 그냥 돌아가는 손님들로 가득했다. 강원도 고냉지에서 출하된 배추는 1단 8000원, 1망 11000원으로 한달전보다 많이 내리긴 했지만 서민들의 지갑을 쉽게 열게 하지는 못했다.
시장을 찾았던 주부 이채순(48·수유동)씨는 “배추 사기가 여전히 겁난다”며“얼갈이 배추 정도로 대신해야겠다”고 한숨을 쉬었다. 최영희(55·수유동)씨는 작은 양파를 구입했다. 최씨는 “월급은 오르지 않고 물가만 천정부지로 뛰니 우리 식구들 식비를 줄일 수밖에 없다”면서 더이상 물건을 사지 못했다.
음식점을 찾는 수요도 줄었다. 남대문 시장의 자리 좋은 대로변에 있는 한 해장국 집은 손님이 많아야 할 저녁시간인데도 불구하고 텅텅 비어 있었다. 점주 이윤희(55·답십리)씨는 “20년간 요식업을 했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며 “IMF때보다도 더 어려운 것 같다”고 말했다.
이씨의 말처럼 30평정도 되는 가게에서 저녁 시간인 5시부터 8시까지 내내 손님은 기자를 포함해 3명에 불과했다. 이씨는 “이대로 가다가는 임대료도 못 낼 판”이라며 “견디다가 안 되면 문을 닫아야겠다”고 고개를 숙였다.
올 가을 들어 가장 추운 날 아침, 날씨 때문인지 재래시장 체감 경기는 더 꽁꽁얼어붙은 것으로 보인다. 싸늘한 서민 경기를 반영하듯 상인들 중 웃는 표정을 짓는 사람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시장 개시후 손님이 없자 10시 30분부터 이른 점심을 먹는 상인도 있었다. 시간이 지나서 손님이 활발해야 할 오후 시간이 됐지만 시장은 한산했다.
상인들의 호객하는 목청도 갈수록 줄었다. 아예 장사를 포기하고 상인 끼리 삼삼오오 모여 있기도 했다. 한 상인은 “뉴스에서는 물가가 내려서 경기가 좋아질 것이라고 했는데 지금 우리네 시장 경기는 더 나빠지는 중”이라며 고개를 떨궜다.
한국은행이 집계한 10월 소비자동향에 따르면 이달 소비자심리지수는 108로 3개월째 하락세를 보였다. 또한 월 농림수산품의 생산자물가지수가 전달보다 16% 올랐다. 이는 관련 통계가 시작된 1965년 이후 처음으로 두 자릿수를 넘은 것이다.
반면 기업들의 실적은 삼성전자가 3분기에 사상 최대규모인 40조2300억원의 매출을 기록하는 등 사상 최대의 호황을 보이고 있다. 소비심리회복으로 백화점과 대형마트 등도 전년 동기 대비 두자릿수 성장을 이어가는 등 경기에 민감한 유통업계도 나아졌다고 한다.
구두·시계 등을 수리하는 곳은 수선을 맡기거나 기다리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서울 무교동에서 시계방을 운영하는 이철수(62·가명)씨는 “이전에는 싼 전자시계의 시곗줄이 떨어지면 손님들이 그냥 버렸지만 지금은 시곗줄을 다시 바꾸러 온다”며 “어려워진 경기 때문에 하나라도 아끼려는 심리가 반영된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 다동에서 구두수선방을 운영하는 이채호(54·가명)씨는 “이전보다 구두 수선하러 오는 사람이 30%나 늘었다”며 “경기가 어렵다고 하는 데 우리네 같은 곳은 더 호황이다”고 말했다.
그러나 서민들의 체감경기는 낮은 취업률과 물가상승 대비 정체된 수입 등으로 도대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기업들의 호황이 생활경제로 이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기획재정부는 지난 달 29일 거시경제안정보고서를 통해서 “2008~2009년 위기 때 사라진 일자리가 40만개에 달한다”며 “청년층과 자영업을 중심으로 상당시간 어려움이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보고서는 “청년고용 부진이 계속되면 성장잠재력이 약화되고 사회불안을 초래하는 등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