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호 국무총리 후보자가 29일 총리 후보직을 자진사퇴한 것은 국회 인사청문회의 검증 절차를 넘어서지 못한 때문이다.
총리 서리를 포함해 역대 총리 후보자 가운데 중도하차한 사람은 신성모, 허 정, 이윤영, 백한성, 박충훈, 이한기, 장 상, 장대환씨 등 8명이고, 2000년 6월 인사청문회법이 제정된 이래 청문회 검증 과정에 걸려 낙마한 총리 후보자는 이번이 3번째다.
지난 2000년 인사청문회법 제정 당시 여당인 민주당은 허위사실 등 무분별한 의혹 제기에 대해선 제동을 걸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야당인 한나라당은 강력한 검증이 필요하다고 주장해 현재의 인사청문회법을 탄생시켰다.
이러한 인사청문회법이 도입된 뒤 국회 임명동의 절차의 문턱을 넘지 못한 첫번째 총리 후보자는 장 상 총리 서리였다.2002년 7월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헌정사상 첫 여성 총리 후보로 당시 장 상 이화여대 총장을 내정했다.
그러나 청문회 과정에서 위장전입, 부동산 투기, 장남의 이중국적 문제 등이 불거졌고, 같은 해 7월 말 국회에서 인준안이 부결되면서 장 총리 서리는 `서리 딱지'를 떼지 못하고 낙마했다.
이어 한달 뒤 총리 후보자로 장대환 매일경제신문 사장이 임명됐으나 장 후보 역시 위장전입과 부동산 투기 의혹 등이 제기되면서 국회 임명동의의 벽을 넘지 못했다.
참여정부 들어선 총리 후보자가 청문회 검증에 걸려 낙마한 사례가 없었고, 이명박 정부에서도 한승수, 정운찬 총리에 대해 야당인 민주당이 각종 의혹을 제기하며 공세를 펼쳤지만 무난하게 임명됐다.
하지만 차세대 대권주자로까지 거론되며 화려하게 등장한 김 총리 후보는 결국 국회 검증의 문턱을 넘지 못했고, 이명박 정부 들어 처음으로 낙마한 총리 후보라는 기록을 남기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