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못살겠다 갈아보자"

입력 2010-06-14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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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위기에 유권자 좌파에 등돌려

유럽에 정권 교체 바람이 불고 있다. 재정위기 사태가 악화되면서 먹고 살기 힘들어진 민심이 떠났기 때문이다.

최근 실시된 영국 벨기에 슬로베키아 등 유럽 주요국 선거에서 모두 중도 보수파가 승리를 거두며 유럽연합(EU) 27개 회원국 중 남유럽발 경제위기의 진원지인 그리스 스페인 포르투갈 등 3개국만이 좌파정당이 집권하는 나라로 남게 됐다.

유럽 선거에서 보수우파가 승리한 배경은 경제위기를 초래한 좌파 집권세력에 유권자들이 등을 돌렸기 때문이라는게 전문가들의 지배적인 의견이다.

이에 따라 EU의 정치판도에도 커다란 지각변동이 예고되고 있다.

13일(현지시간) 실시된 벨기에 총선거에서는 북부 플레미시(네덜란드어권) 지역에서 플레미시 분리를 주장하는 '새 플레미시 연대(N-VA)'가 승리했다. 이에 따라 벨기에의 남북 분단이 현실적 이슈로 부상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벨기에의 남북 갈등은 19세기 벨기에가 네덜란드에서 독립할 당시 권력을 장악한 남부 왈로니아 지역이 프랑스어를 공식어로 채택하자 네덜란드어를 쓰는 북부 플레미시 지역이 반발하며 시작됐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플랑드르 지역의 경제력이 발전하자 왈로니아 지역은 20년 가까이 플레미시 지역에 지방재정을 의존해왔다.

여기에 최근 유럽 재정위기를 일으킨 그리스에 대한 지원금이 대폭 늘어나자 플레미시 지역 주민들의 반감이 더욱 깊어졌다.

N-VA는 플레미시 지역 제1당의 여세를 몰아 전체 150석의 하원에서도 30석을 차지하면서 최다 의석을 확보하며 차기 연립정부 구성을 주도할 전망이다.

150석 하원에서 과반을 확보하려면 두 언어권 지역의 정당 3~5개가 연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N-VA가 연정협상을 주도하면 협상이 수개월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유력하다.

실제로 벨기에에서는 지난 2007년 6월 총선이 치러진 후 새 정부가 출범하는데 9개월이나 소요된 바 있다.

앞서 12일 치러진 슬로베키아 총선에서도 그리스 지원에 반대하는 중도우파 야당이 승리했다.

그리스에 대한 지원 유보를 약속한 슬로박민주기독연맹(SDKU) 등 중도우파 4개 야당은 전체 의석의 과반을 확보해 연정 구성을 위한 협의에 들어갔다.

지난해 1월 유로존(유로화 사용 16개국)에 가입한 슬로바키아 유권자들은 자국보다 잘사는 그리스에 자금을 지원하는 것에 대한 반감이 높았다.

유로존의 그리스 지원 금액 중 슬로바키아가 부담할 몫은 8억유로로 올해 예상 국내총생산(GDP)의 1.2%, 재정적자의 21%나 되는 금액이다.

이에 유권자들은 그리스 지원을 뒤로 하고 자국의 재정적자 감축, 일자리 창출, 기업 환경 개선 등을 공약으로 내세운 중도우파에 고개를 돌린 것이다.

지난달 열린 영국 총선에서도 보수당이 13년 만에 집권 노동당을 누르고 제1당이 되고 연정 구성에까지 성공했다.

영국 노동당은 지난 1997년 토니 블레어 당수가 보수당을 누르고 집권에 성공한 뒤 2001년과 2005년 총선에서 잇따라 과반의석을 차지하며 제1당 자리를 확고히 해왔다.

그러나 4기 연속 장기집권에 대한 유권자들의 견제심리가 작용한데다 세계 금융위기 이후 영국 경제가 침체를 겪는 상황에 대한 반발이 일면서 노동당은 제2당으로 추락했다.

지난 4월 헝가리 총선에서도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지원 받은 헝가리 국민들이 재정지출 확대를 내건 야당에 표를 몰아주며 8년간 집권했던 좌파 사회당이 참패했다.

전 정권이 경제난 극복을 위해 재정지출을 축소함에 따라 복지혜택이 줄면서 국민들의 반발이 컸기 때문이다.

제1야당이던 중도우파 피데스(청년민주연맹)는 이번 총선에서 경제성장을 최우선 정책 기조로 삼아 일자리 창출, 세금 감면 등을 추진하겠다고 공약하며 대폭적인 재정 지출을 약속했다.

지난해 9월 치러진 독일 총선에서도 중도우파 기민당(CDU)ㆍ기사당(CSU) 연합은 제1당의 자리를 지킨 반면 기존 대연정에 소수 파트너로 참여했던 사민당(SPD)은 최악의 득표율로 참패했다.

지난 2008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그해 4월 이탈리아 총선에서도 우파연합이 압승해 상ㆍ하원 모두 안정적 과반의석을 확보한 바 있다.

유럽 각국 선거에서 보수우파가 승리한 것은 경제위기를 초래했을 뿐만 아니라 관리 또한 제대로 하지 못한 집권세력에 대한 심판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 대체적인 분석이다.

이로써 EU 국가 가운데 좌파정당이 집권하고 있는 나라는 2008년 총선에서 사회노동당이 승리한 스페인, 지난해 9월 총선에서 중도좌파 집권 사회당이 승리한 포르투갈, 지난해 10월 총선에서 중도좌파 사회당이 승리한 그리스 등 세 나라만 남게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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