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최초의 자동차는 1955년 국제차량제작 주식회사가 만든 ‘시발’(始發)이었다. ‘처음으로 출발했다’는 뜻의 이 차량은 폐차된 미국 지프차에서 부품을 떼어내고 폐유 드럼통을 활용해 제작됐다. 1323cc 엔진과 최고시속 80㎞의 성능을 지녔지만, 부품의 절반은 수입에 의존했고 생산라인 없이 수작업으로 만들어져 한 대를 완성하는 데 넉 달이 걸렸다.
망치로 드럼통을 두드려 차체를 만들던 한국 자동차 산업은 올해로 70주년을 맞았다. 자동차 산업은 정부의 보호정책, 외국 기술 제휴, 외환위기 극복, 전기차·자율주행 등 미래 모빌리티로의 전환을 통해 비약적 성장을 이뤘다. 현대자동차·기아를 필두로 다양한 완성차 및 부품업체가 산업생태계를 형성했고 한국은 세계 10위권 자동차 강국으로 도약했다. 전기차, 수소차, 자율주행 분야에서도 글로벌 경쟁력을 갖췄다.
수많은 도전과 역경을 이겨낸 자동차 산업은 대한민국 경제 발전의 핵심 동력으로 자리잡았다. 지난해 자동차 생산대수는 412만8200대에 달했으며 수출액은 641억3200만 달러(약 91조2900억 원)를 기록했다. 산업 기반도 확대됐다. 2022년 1만3409개였던 사업체 수는 지난해 1만6807개로 늘었고, 종사자 수도 같은 기간 25만3935명에서 29만1717명으로 증가했다.
하지만 ‘칠순’을 맞은 한국 자동차 산업은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다. 무역 분쟁, 중국의 급부상, 내수 침체 등 복합적인 위협이 한꺼번에 몰려오고 있다. 14일 열린 ‘자동차의 날’ 기념행사에서 강남훈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KAMA) 회장은 “글로벌 보호무역주의 심화와 전동화 등 산업 패러다임의 전환, 중국의 부상 등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다”고 언급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자동차 생산순위는 글로벌 5~6위에서 7위로 떨어졌다.
미국의 자동차 관세 부과는 대미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자동차 산업 시장에 직격탄이 됐다. 관세청 에 따르면 이달 1~10일 승용차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23.2% 감소했다. 미국의 자동차 품목별 관세 조치 영향 탓이다. 지난해 기준 대미 수출 비중은 전체 자동차 수출의 49%에 달한다.
중국의 추격도 거세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글로벌 전기차 판매 1위는 중국 BYD였다. BYD는 전년 동기 대비 50.9% 증가한 87만5000대를 팔았고 올해 600만 대 판매를 목표로 하고 있다. 유럽(헝가리·터키)과 동남아(태국·인도네시아·캄보디아) 지역에 현지 공장을 신·증설하며 글로벌 생산거점을 빠르게 늘리는 중이다. 가격 경쟁력과 기술력을 앞세운 BYD는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며 전기차 생태계 전반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한국 자동차산업의 혁신과 성장을 위한 ‘골든타임’은 그리 길지 않다. 한 번 추락한 산업 경쟁력을 되살리는 데는 수십 년이 걸릴 수도 있다는 점에서 정부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관세와 지정학적 문제 등은 국가 차원의 대응이 필요한 사안이다. 산업 발전을 위한 규제 완화와 투자 지원 확대, 미래차 인프라 구축 등도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한 영역이다. 자동차 업계는 전기차 보조금 확대, 미래차 투자에 대한 세제지원 확대, 인공지능(AI)·소프트웨어 분야 전문 인력 양성, 협력적 노사관계 구축을 위한 제도 개선 등을 요청하고 있다. 산업계의 요구에 대한 면밀한 검토와 실효성 있는 정책 마련을 고민해야 할 때가 됐다. 차기 정부의 어깨가 무거워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