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 아이돌이 종횡무진 활약하고 있습니다.
일단 글로벌 리스너들의 시선은 미국 캘리포니아 인디오의 사막에 꽂혀 있는데요. 1999년 시작돼 매년 30만 명의 관객을 끌어모으는 세계적인 음악 축제 '코첼라 밸리 뮤직 & 아츠 페스티벌'(이하 '코첼라')가 열리고 있기 때문이죠. 블랙핑크 멤버 리사, 제니의 솔로 무대가 공개돼 열렬한 환호를 받았습니다. 이 무대에서는 '블랙핑크'의 이름을 떼고, 솔로 아티스트인 '리사'와 '제니'의 이름을 각각 각인했다는 평가가 나오죠.
두 사람이 끝이 아니었습니다. 보이그룹 엔하이픈은 격한 안무와 무대 곳곳을 누비는 역동적인 퍼포먼스에도 빈틈 하나 없는 실력을 뽐냈는데요. 멤버 전원이 핸드 마이크를 들고 열창했죠.
세계를 무대로 한 활약은 이어집니다. 엔하이픈은 코첼라 무대를 찢은 직후 월드투어 소식도 전했는데요. 미국과 유럽 10개 도시에서 총 12회 공연을 펼칠 예정입니다.
다만 팬들 사이에서는 기쁨과 우려의 목소리가 교차합니다. 큰 무대에서 더 많은 팬을 만날 절호의 기회지만, 빡빡한 스케줄이 걱정된다는 취지인데요. 팬들의 걱정에도 가수와 기획사가 월드투어에 힘을 실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월드투어가 가수는 물론 기획사에도 많은 걸 가져다주기 때문인데요. 월드투어에 힘입어 '중소의 기적'을 노리는 기획사도 있어 눈길을 끌죠.
15일 KQ엔터테인먼트(KQ엔터)는 본격적으로 상장을 추진한다는 소식을 전했습니다. KQ엔터는 미래에셋증권과 기업공개(IPO) 주관 계약을 체결, 내년 상장을 목표로 내부 조직을 정비하고 공모 준비를 시작했죠.
KQ엔터는 2013년 설립돼 보이그룹 에이티즈, 싸이커스 등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아티스트를 제작하는 종합 엔터테인먼트 기업입니다. 냉철한 K팝 팬들 사이에서는 '중소 기획사'로 분류되는 곳이지만, 최근 성장세는 꽤 매서웠습니다.
특히 2018년 데뷔한 에이티즈는 폭발적인 성과를 내면서 주력 지식재산권(IP)으로 자리 잡았는데요. 2021년 미국 빌보드의 메인 차트인 '빌보드 200'에 처음 진입한 이후 2023년 정규 2집으로 같은 차트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연이어 지난해 11월 발매한 미니 11집으로 두 번째 빌보드 200차트 1위를 달성하면서 '중소의 기적'으로도 불렸죠.
괄목할 점은 에이티즈가 세계 무대를 밟을 때마다 점차 확장된 규모로 높아지는 글로벌 인기를 입증했다는 겁니다. 데뷔 4개월 만에 북미 및 유럽 투어를 개최한 이들은 지난해 1월부터는 서울 공연을 시작으로 일본 사이타마, 미국 타코마·오클랜드·로스앤젤레스·토론토, 프랑스 리옹, 이탈리아 밀라노, 벨기에 브뤼셀 등 일본, 북미, 유럽 각지의 팬을 만났는데요. 지난달 서울에서 열린 피날레 공연을 끝으로 1년 2개월에 걸친 월드투어 '투워즈 더 라이트 : 윌 투 파워'(TOWARDS THE LIGHT : WILL TO POWER)를 마무리했죠. 특히 북미 10개 도시에서 공연 13회를 진행해 20만 관객을 끌어모았습니다.
KQ엔터의 상장 추진 동력에도 불이 붙었습니다. KQ엔터는 2022년 매출액 464억 원, 영업이익 44억 원에서 2023년 650억 원, 영업이익 59억 원으로 성장했고요. 지난해에는 매출액 1158억 원, 영업이익 125억 원을 기록했습니다. 2년 사이 매출액은 약 150%, 영업이익은 약 184% 상승했죠.
이러한 성장엔 무엇보다 공연 매출이 주효했습니다. 전년 대비 공연 매출이 약 240% 늘었고, 공연 매출 비중도 약 25%에서 약 49%로 상승했죠.
월드투어는 대형 기획사들의 매출 핵심입니다. 해외 콘서트 티켓은 수익성이 높은 데다가 MD(머천다이즈·굿즈) 매출 상승에도 기여합니다. 콘서트장 한 편에서 응원봉부터 슬로건, 티셔츠, 키링, 인형 등 각종 굿즈를 파는 걸 떠올려 보면 이해가 쉽죠.
블랙핑크는 2022년 10월부터 2023년 9월까지 약 1년에 걸쳐 북미, 유럽, 아시아, 오세아니아, 중동 등 세계 각국 34개 도시에서 66회에 걸쳐 월드투어 '본 핑크'(BORN PINK) 공연을 펼쳤습니다. 이 월드투어로 블랙핑크가 만난 글로벌 팬은 180만여 명에 달하는데요. K팝 걸그룹 최대 규모로 남은 이 공연은 3억3000만 달러(한화 약 4700억 원)를 벌어들였습니다. K팝에서 나아가 역대 전 세계 여성 가수 투어 수익 6위 기록에 해당하는 수치입니다.
YG엔터테인먼트(YG엔터)에 적지 않은 시선이 쏠리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앞서 블랙핑크 멤버들은 개인 활동은 각자, 그룹 활동은 기존 소속사인 YG엔터 산하에서 함께하기로 의견을 모았는데요. 그간 솔로 활동에 힘을 쏟아온 멤버들은 7월 고양 공연을 시작으로 미국 LA와 시카고 뉴욕, 캐나다 토론토, 프랑스 파리, 이탈리아 밀라노, 스페인 베르셀로나, 영국 런던, 일본 도쿄 등에서 내년 1월까지 월드투어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이에 증권가에선 YG엔터 목표주가를 높여 잡기도 했습니다. 김지현 흥국증권 연구원은 8일 "블랙핑크 글로벌 콘서트가 다가오며 주당순이익(EPS)이 늘어날 전망"이라며 "블랙핑크 그룹의 체급이 커지고 있다. 세 번째 월드투어는 7월 5일 시작되는데, 이번 월드투어는 두 번째 투어 규모를 웃돌 것"이라고 내다봤죠. 베이비몬스터의 월드투어도, 보이그룹 트레저의 7월 정규 3집 컴백 계획도 남아 있는데요. 흥국증권은 YG엔터의 목표주가를 기존 5만4000원에서 8만 원으로 높였습니다.
같은 이유로 하이브에도 이목이 쏠립니다. 하이브는 지난해 147회의 콘서트와 25회의 팬미팅을 진행하면서 창사 이래 최대 매출을 기록한 바 있는데요. 특히 지난해 4분기 공연 매출은 1889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배 이상 증가했죠.
올해는 간판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군백기 종료 및 완전체 복귀가 가장 큰 호재로 거론됩니다. KB증권은 15일 낸 리포트에서 BTS의 완전체 활동이 재개되면 모객 인원 500만 명 이상의 월드투어 매출과 규모의 경제를 통한 영업이익률 개선이 가능할 것으로 짚었습니다. 실로 최근 BTS 멤버들이 전역하면서 솔로 활동을 시작, 팬 플랫폼인 위버스의 월간활성이용자(MAU) 수가 1000만 명 수준을 회복하는 등 활동 재개에 대한 기대감을 여실히 보여줬죠.
흥국증권도 "BTS와의 재계약 당시 방시혁 의장이 '화양연화 pt.1' 10주년 기념 앨범 발매 의지를 밝힌 만큼, 실제 출시될 경우 팬들의 반응이 뜨거울 것"이라며 "공연 등 매출 비중이 확대되면서 영업이익은 상대적으로 감소할 수 있으나, 규모의 경제를 통한 원가 절감이 필요한 시점으로 BTS의 활동 재개가 올해 실적 회복의 핵심 요인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단순히 매출을 떠나, 월드투어는 그룹에도 중요한 분기점이 됩니다. 글로벌 팬덤 확장 및 유지의 기회가 되고요. 북미·유럽 시장은 여전히 'K팝 시장 공략의 척도'처럼 여겨지는 경향이 있어 진출 여부만으로도 하나의 상징성이 형성되죠. 무엇보다 무대는 물론 체력과 멘탈 관리에 힘써야 하기에 성장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조성되는데요. 실로 지난해까지 약 10개월에 걸쳐 첫 번째 월드투어를 성료한 걸그룹 아이브는 MR 제거 영상 등을 통해 눈에 띄게 발전한 라이브 실력과 퍼포먼스로 화제를 빚은 바 있습니다. 멤버 리즈도 "긴 시간 동안 월드투어를 하다 보니 멤버들끼리 더욱 돈독해졌고 성장한 것 같아 뜻깊다"고 소회를 전해 훈훈한 미소를 자아냈죠.
이런 만큼 저연차 아티스트들도 일찍이 월드투어를 진행하는 추세입니다. 과거엔 어느 정도 연차가 차 국내 팬 기반을 다진 아이돌 그룹이 월드투어를 진행했다면, 최근엔 데뷔 2~3년차 등 비교적 낮은 연차의 아티스트도 해외 투어를 활발히 진행 중인데요. 2023년 데뷔한 에잇턴은 최근 뉴욕과 애틀랜타 공연을 성료하며 월드투어 포문을 열었고, 지난해 데뷔한 베이비몬스터는 데뷔 첫 월드투어의 일본 일정을 마무리하는 등 바쁜 일정을 소화 중입니다.
주력 아티스트들의 대규모 월드투어는 훌륭한 캐시카우 역할을 해줍니다. 고성장 사이클이 월드투어로 인해 시작될 수 있는 만큼, 기획사는 월드투어에서 최고의 무대를 선보일 수 있도록 총력을 다하는데요. 이 노력이 지나친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옵니다.
실로 이번에 월드투어 추가 공연 소식을 전한 엔하이픈은 K팝 팬덤 사이 '열일'(열심히 일한다)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지난해 9월 월드투어 '페이트 플러스'(FATE PLUS)를 마친 엔하이픈은 같은 해 10월 새로운 월드투어 '워크 더 라인'(WALK THE LINE) 포문을 열었습니다. 이 투어는 여전히 진행 중인데요. 미국, 유럽 등 새로운 일정 추가 소식을 이번에 전해 눈길을 끌었죠. 소속사 빌리프랩에 따르면 엔하이픈은 8~9월 미국과 10개 도시에서 월드투어 '워크 더 라인 인 U.S. & 유럽'(WALK THE LINE IN U.S. & EUROPE)' 12회를 펼칠 예정입니다.
미국 투어는 8월 6~7일(이하 현지시간) 뉴욕 벨몬트 파크 UBS 아레나에서 막을 올리고요. 이후 9일 시카고 유나이티드 센터, 12~13일 휴스턴 도요타 센터, 16일 로스앤젤레스 BMO 스타디움으로 이어집니다. 데뷔 이래 첫 유럽 투어에도 나서죠. 엔하이픈은 8월 22일 런던 O2 아레나를 시작으로, 25일 맨체스터 AO 아레나, 28일 암스테르담 지고 돔, 30일 브뤼셀 ING 아레나, 9월 1일 베를린 우버 아레나, 3일 파리 아코르 아레나를 뜨겁게 달굴 전망입니다.
그러나 빽빽하게 설정된 공연 날짜가 팬들의 우려를 키웠습니다. 공개된 일정에 따르면 엔하이픈은 8월 2, 3일 일본 오사카 스타디움에서 공연한 뒤 미국 뉴욕으로 날아가 6~7일 공연합니다. 이후로도 이틀에 한 번꼴로 미국과 유럽 도시를 찾을 예정입니다.
팬들 사이에서는 다양한 의견이 나옵니다. 코첼라 직후 새 앨범으로 컴백, 투어를 함께 도는 게 자연스러운 '물 들어올 때 노 젓기'에 해당한다는 의견이 있는 반면, 미국·유럽 체류 여건상 바쁜 스케줄을 보내야 하는 사실을 감안하더라도 무리한 일정이 아니냐는 지적이 공존하죠.
월드투어는 단순히 더 많은 팬을 만난다는 공연 차원을 넘어, 기획사 수익 구조와 시장에서의 신뢰도를 높이는 전략 자산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상장 추진 기업과 대형 기획사 모두 공연 실적을 실적 개선의 핵심 동력으로 내세우고 있고요. 월드투어 규모가 증권가의 목표주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이에 아티스트의 안정적인 활동 지속을 위한 균형 잡힌 장기 전략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는데요. 팬덤이 제기하는 우려 역시 단순한 감정이 아닌 산업의 지속 가능성을 향한 합리적인 문제 제기로 읽혀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