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장기적 관점에서 전략 필요…“정부, 산업계와 협력해 방안 모색해야”
미국 정부가 14일(현지시간) 의약품과 반도체 등 수입이 국가 안보에 미치는 영향을 판단하기 위한 조사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앞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조만간 품목별 관세를 발표하겠다”고 언급한 품목인 만큼 관세 부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큰 상황이다.
15일 제약바이오업계와 외신 등에 따르면 미국 상무부는 관보를 통해 반도체, 반도체 장비, 파생제품 수입이 국가 안보에 미치는 영향을 판단하기 위한 조사에 착수했다. 국가 안보를 이유로 이들 제품에 대한 관세를 물리기 위한 것이다. 이번 조사에는 완제의약품과 제네릭, 원료의약품(API), 백신, 항생제 등이 포함된다. 주요 수출국의 해외 공급망에 따른 의약품 예상 수요를 고려해 소수 공급업체의 수입 집중에 따른 위험도, 국내 생산 능력 향상 가능성 등 전반적인 조사가 이뤄진다.
이번에 동원된 법 조항은 ‘무역확장법 232조’로 특정 품목들이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것으로 판명되면 대통령이 관세를 물릴 수 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앞서 철강·알루미늄과 자동차 및 자동차부품에 25% 관세를 부과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내 의약품 생산이 부족하다고 지적하며 의약품에 25% 이상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수차례 밝혔다. 이에 일라이 릴리, MSD, 존슨앤드존슨, 노바티스 등 글로벌 제약기업들이 미국 내 투자를 확대하기로 했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해당 조사로 인해 관세 부과까지 이어져도 큰 타격은 없을 것으로 전망했다. 다만 정부 차원에서 산업계와 협력해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 부회장은 “관세로 인해 영향을 받게 되는 분야가 바이오시밀러와 위탁개발생산(CDMO)이지만, 글로벌 경쟁력이 있는 만큼 자신감을 가져도 된다. 2~3년 만에 산업이 쉽게 바뀌지 않는다.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전략을 잘 세워야 한다”라며 “그 외 국내 제약·바이오산업에 대한 영향은 크지 않으리라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지금까지의 상황을 봤을 때 의약품에 대한 관세를 부과할 가능성이 크다”면서 “전 세계 API 시장을 중국과 인도가 양분하고 있는데, 중국에 대한 통제가 거세지면 인도 시장만 남게 된다. API 벨류체인이 무너지면 수입 단가가 올라 전체적으로 의약품 산업이 영향을 받게 될 테니 한 나라에 API 공급을 맡기지 않고 다변화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단순히 협상용 카드로 의약품에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말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정윤택 제약산업전략연구원장은 “관세 부과로 인해 의약품 공급이 중단되면 국가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 관세를 높이는 행위는 오히려 안보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이라며 “반도체도 마찬가지다. 의약품과 똑같은 논리로 수입이 중단된다면 미국의 반도체 기반 산업이 무너지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 원장은 “관세를 매기겠다는 조사가 아니라, 관세를 부과했을 때 미국에 있는 공급망이 어떻게 될 지 확인하려는 것”이라며 “중장기적으로 봤을 때 리쇼어링(생산시설 국내 이전)을 목표로 하는 것 같다. 다만 글로벌 빅파마가 미국 직접 투자를 늘린다고 했지만, 공장을 짓고 인력을 구성하는 데에 최소 3~4년이 걸린다. 관세 부과는 미국 국민의 부담을 늘릴 수밖에 없다. 또 CDMO에 관세를 매기면 미국 기업이 피해를 보는 만큼 단순 협상카드로 쓰일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한편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의 ‘2024년 보건산업 수출실적’에 따르면 우리나라가 미국에 수출하는 의약품은 14억9000만 달러(약 2조1214억 원) 규모이며, 이중 바이오의약품이 11억6000만 달러(1조6516억 원)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이병관 한국보건산업진흥원 바이오헬스혁신기획단장은 “미국의 관세 정책 변화가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이에 따라 대외적인 무역 환경에 대한 면밀한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