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류ㆍ재고ㆍ가격 관리 모두 난항
공급망 재편은커녕 전략 못 잡아
이번주 내 반도체 관세 예고까지
"이유ㆍ근거 없이 수시로 바뀌어
시나리오ㆍ경우의 수 뛰어넘어"
정부도 혼란 속 대응 마련 고심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관세 정책을 수없이 번복하면서 국내 기업들은 패닉 상태다. 하루가 멀다하고 바뀌는 관세 정책에 따라 국내 기업들은 물류와 계약, 재고, 가격 전략까지 연결된 대응전략이 수차례 흔들리며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공급망 재편은커녕 당장의 가격 및 물량 조정도 결정할 수가 없다는 게 관계자들의 하소연이다. 트럼프의 ‘오럴리스크’에 따른 불확실성에 기업들의 시름도 갈수록 짙어지고 있다.
14일 외신 및 재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13일(현지시간) 대통령 전용기 에어포스원 기내에서 기자들과 만나 반도체에 대한 관세가 곧 시행될 것이라고 전했다. 미국 시간으로 일요일에 나온 발언인 만큼, 이번 주 내에 새로운 반도체 품목 관세가 발표될 것이라는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그런데 이마저도 어떻게 바뀔지 알 수 없다. 그간 발표해온 품목·보편·상호 관세 정책이 수시로 바뀌고 있어서다. 특별한 이유나 근거도 없이 정해지는 것처럼 비쳐진다는 점도 문제다. 이에 따른 정부와 기업 관계자들의 피로도도 상당하다.
한 업계 관계자는 “관세 정책이 나오기 전부터 어느 정도 예상해둔 시나리오와 경우의 수가 있었는데, 최근 발표된 정책은 그 수를 훨씬 넘어가고 있어 혼란스럽다”며 “상호관세 적용을 90일 유예를 한다고 했지만 언제 또 뒤집힐지 알 수 없는 상황이어서 내부에서 어떠한 결정을 짓기도 어렵다”고 털어놨다.
2일 트럼프 대통령은 57개 국가에 대한 상호관세율을 공개했다. 중국 34%, 한국 25%, 베트남 46% 등이다. 이 상호관세율은 9일부터 적용될 예정이었다.
그런데 정작 당일이 되자 입장이 바뀌었다. 중국을 제외한 모든 국가에 대한 상호관세를 90일 유예하고, 그때까지는 10%의 기본 관세만 적용한다는 것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많은 사람이 겁먹고 불안해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그 배경을 설명했다. 중국에 대한 관세는 125%로 인상했다. 중국 역시 미국에 대한 관세를 올렸다는 이유에서다.
11일에는 미국 관세국경보호국(CBP)가 일부 전자제품을 상호관세 부과 대상에서 제외한다고 공지했다. 스마트폰과 노트북, 하드디스크 드라이브 등 20개 전자제품이 상호관세 적용을 받지 않는 것으로 분석된다. 그 배경에는 자국 기업 ‘애플’이 있다. 중국에서 물량의 대부분을 생산하는 애플이 피해를 받지 않게끔 트럼프 대통령이 부담을 덜어줬다는 해석이 분분했다.
이틀 뒤 트럼프 대통령은 반박에 나섰다. 그는 13일 “관세 예외를 발표한 적이 없다”며 “다른 관세 범주로 옮겨가는 것”이라고 했다. 또다시 상호관세에서 빠진 전자제품도 반도체 품목 관세에 포함될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다른 기업 관계자는 “무계획인 트럼프의 관세 정책에 기업들이 계획을 세운다는 것 자체가 너무 어려운 상황”이라며 “불확실한 정책을 상대하다 보니 매일 밤을 새우며 준비하는 전략과 대응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트럼프발 관세 정책이 뒤집힐 때마다 정부도 혼란스럽다.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새로운 정책, 또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 공개될 때마다 부처에서도 산업별, 업종별, 기업별 대응 방침이나 예상되는 피해 규모를 매번 새롭게 집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업과 정부 모두 아침이 되면 새로운 관세 정책에 따라 전략을 수립하지만 밤이 되면 또 관세 정책이 바뀌는 식이다.
심우중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위원은 “관세가 어떤 우리 기업에 어떤 영향을 특별히 더 미치는지 살펴봐야 하지만 아직은 명확한 것이 없다”며 “(관세 정책이 굳어진다면) 기업이 마케팅이나 판매 가격에 얼마만큼 그 부담을 가격으로 전가할지를 결정하는 경영 전략으로 귀결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비교적 이른 시점인 2월 초 철강과 알루미늄 분야에 대해 25%의 품목 관세를 부과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고 실제로 3월 12일부터 관세가 발효됐다.
일정 시간이 흐른 만큼 관련 해당 업계에서는 더 이상 큰 변동은 없을 것이라는 인식 아래 기업별로 재고와 가격 조정에 대한 논의를 마친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스마트폰과 가전, 반도체 등 다른 제품들 역시 품목·상호관세가 구체화하면 기업들의 전략도 윤곽을 드러낼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