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내에서도 비판의 목소리 커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정부기관 지출을 이유로 미국 보건복지부(HHS) 대규모 인력 감축에 나섰다. 국내외 제약바이오기업들은 의약제품의 심사·허가 등이 지연될 가능성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14일 제약·바이오업계와 외신 등에 따르면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Robert F. Kennedy Jr) 미국 보건부 장관은 3월 27일(현지시간) 미국 식품의약국(FDA) 3500명을 포함해 HHS에서 1만 명을 해고할 계획을 발표했다.
비판이 이어지자 다음 달 1일 “2000건의 해고는 실수로 이뤄졌다. 감원되지 말았어야 할 직원들이 감원됐다. 그들을 복직시키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주요 고위직은 이미 FDA를 떠났으며, 해고를 철회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고 외신은 보도하고 있다.
미국 정부의 이러한 조치에 따라 FDA 역량 저하에 대한 우려는 미국 내에서도 발생하고 있다. 미국 RA 캐피탈 매니지먼트(RA Capital Management) 최고경영자(CEO)이자 비영리 단체 ‘남은 환자 없음(No Patient Left Back)’ 설립자인 피터 콜친스키(Peter Kolchinsky) 등 200여 명의 바이오기술분야 리더들은 “이미 FDA 구조조정의 영향을 받았다. 정부는 핵심 기능을 신속하게 보존하고 복원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들은 빌 캐시디(Bill Cassidy) 미국 상원 보건위원회 위원장에게 서한을 보내 “우리는 FDA를 강화하고 현대화하고자 하는 열망을 공유한다”며 “최근 기관의 인력 감축과 잇따른 퇴직으로 인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사라질 것을 우려한다. 미국 환자, 미국 산업, 미국 생명공학 분야 리더십에도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소규모 임상 단계 바이오텍 기업들이 이번 구조조정으로 인해 심한 타격을 입을 것으로 전망했다. 일반적으로 자원이 부족한 상황에선 FDA 심사·허가 등을 통해 기술력을 입증해야 자금을 확보할 수 있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FDA 검토가 지연되면 회사가 다음 단계의 개발로 나아가는 데 필요한 자금을 확보하는 능력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지난 몇 년간 제약바이오업계에 대한 투자가 저조했으나 2025년쯤 정상화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그러나 이제 더 큰 위기를 맞이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고 토로했다.
미국 공중보건협회(APHA)는 케네디 장관의 사임까지 요구하고 있다. 조지 벤자민(Georges Benjamin) APHA 사무총장은 9일(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그는 불과 몇 주 만에 무능함을 드러냈다. 주요 보건기관의 인력을 대대적으로 감축하고, 이들 중 상당수가 해고돼서는 안 됐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은 부실하고 무분별한 관리의 최근 사례다. 이는 모두의 건강을 지키기 위한 공공보건 기관의 업무를 저해할 뿐이다. 국민 건강에 위협이 되므로 사임하거나 해임돼야 마땅하다”고 강조했다.
미국혈액학회(American Society of Hematology·ASH)는 “미 정부의 인력감축은 혈액 질환 환자에 대한 치료를 위태롭게 한다”면서 “부서가 복구되지 않으면 생명을 구하는 공중보건 프로그램이 차질을 빚고, 중요한 연구가 중단되며 예방 가능한 입원·합병증·사망이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FDA의 인력 감축은 국내 바이오기업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한국바이오협회 바이오경제연구센터 관계자는 “의약품 및 의료기기 신제품 리뷰를 앞둔 국내 회사에게도 제품 출시 시기를 다시 고려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또한 허혜민 키움증권 연구원은 “FDA 인력의 대대적인 해체가 FDA 의약품 심사 능력을 전방위적으로 악화시키고 있다는 평가가 이어지고 있어 승인 관문은 확실히 좁아질 것”이라며 “충분한 인력이 있었다면 승인 가능했던 신약들이 거절·지연되거나 아예 개발 포기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