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 삭감 비롯해 홀드백 등 영화계 현안 해결되지 않아
"좋은 영화가 없는 게 아니라 창작 환경 자체가 부재해"
한국영화가 12년 만에 칸국제영화제에 출품작을 한 편도 내놓지 못했다. 경쟁 부문은 벌써 3년째다. 전문가들은 '예산 삭감'과 '투자 위축' 등을 포함해 홀드백, 객단가, 스크린 상한제 등 영화 산업 전반의 현안들이 여전히 답보 상태에 있다는 점을 주된 이유로 거론하고 있다.
14일 영화계에 따르면, 코로나19가 극심했던 시기에도 '비상선언', '당신얼굴 앞에서', '헤어질 결심', '브로커', '다음 소희', '헌트' 등의 영화들이 칸영화제에 진출해 한국영화의 자존심을 세웠다. 하지만 올해는 12년 만에 경쟁·비경쟁 부문에 한 편의 영화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연상호 감독의 '얼굴'과 김병우 감독의 '전지적 독자 시점' 그리고 김미조 감독의 '경주기행'이 출품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최종 리스트에는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당초 박찬욱 감독의 '어쩔수가없다'의 경쟁 부문 진출이 유력했으나 후반 작업이 길어져 출품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지혜 영화평론가는 "단순히 올해 좋은 영화가 없었다는 문제가 아니라 지금 한국 영화계의 전반적인 제작 환경과 산업 구조가 얼마나 취약해졌는지를 보여주는 신호에 가깝다"라고 진단했다.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이날 기준 현재 촬영 중인 한국영화는 26편이다. 촬영 준비 중인 영화는 5편에 불과하다. 중예산 규모 이상으로 좁히면 이보다 더 적다.
10년 전에는 후반 작업을 포함해 촬영이 진행·준비 중인 영화는 총 71편이었다. 지금보다 2배 이상 많았다.
한 영화계 관계자는 "코로나19를 거치면서 한국영화의 제작 편수 자체가 많이 줄긴 했다. 그걸 떠나 질적으로도 점점 퇴행하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게 사실"이라며 "현장 얘기를 들어보면 일단 영화를 계속하겠다는 주니어급 스태프들이 점점 빠지고 있다. 새로운 인재가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인데, 그들 눈에도 미래가 보이지 않는 것"라고 지적했다.
이어 "칸영화제가 절대적 기준이 되는 건 아니지만 당장 일본은 올해 3편의 영화를 출품시켰다. 일본영화 시장 자체는 애니메이션에 의존하고 있는 경향이 크지만, 최근 장편 실사 영화도 한국을 비롯해 여러 나라에서 주목받고 있다. 다양한 방면으로 고민해야 할 지점"이라고 부연했다.
한편 홀드백, 객단가, 스크린 상한제 등 한국영화의 고질적 문제들이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점도 근본적 이유로 거론된다.
앞서 문화체육관광부는 2년 전 '영상산업 도약 전략'을 발표하고 홀드백 등을 도입하겠다는 구상을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업계 내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하면서 논의가 중단됐다.
이지혜 영화평론가는 "작품의 부재라기보다는 환경의 부재처럼 보인다. 홀드백 등 관련 현안들은 물론 지난 정부의 영화 예산 삭감과 이에 따른 투자 위축 등 창작자들을 지탱해줄 시스템 자체가 무너진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