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와서 좋을 게 있나요” 떠나는 이유는 분명하다 [脫 한국, 실패한 리쇼어링①]

'권역 규제'로 수도권 진입 막혀
상대적으로 높은 인건비도 부담
중대재해처벌법-노란봉투법-상법개정안 등
쏟아지는 반기업법에 귀한 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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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지난 10년간 ‘리쇼어링(reshoring·해외 생산 기지의 국내 복귀)’을 꿈 꿔왔다. 떠난 기업들이 다시 돌아오길 바라며 법과 제도를 손질했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돌아오긴커녕 기업들은 해외에 없는 갈라파고스 규제와 높은 인건비 등으로 앞다퉈 ‘엑시트 코리아(Exit Korea)’를 실행에 옮기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압박과 글로벌 공급망 재편은 국내 기업들을 바깥으로 더욱 내모는 구실이 됐고 생산기지로서의 한국의 현실을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본지는 이번 기획을 통해 ‘왜 기업들은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는가’에 대한 현실적 이유를 진단하고, 해법을 모색해본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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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천억 원을 들여 해외에 공장을 세운 기업이 왜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겠습니까? 높은 인건비에다 노동시장은 경직돼 있고, 해외에 없는 규제도 많습니다. 돌아오고 싶어도 여건이 안 됩니다.”

정부는 2014년부터 해외에 나간 생산기지를 국내로 유턴시키는 ‘리쇼어링’을 장려해왔다. 10년이 지난 지금, 오히려 기업들의 해외 진출은 더욱 가속화되는 추세다. 글로벌 무역 경쟁 속에서 ‘탈한국’은 선택이 아닌 생존 전략이 됐다.

14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올해 2월 정부는 범부처 비상수출대책을 통해 리쇼어링 기업에 대한 세제 혜택, 보조금 지원 확대, 국비 지원 한도 상향 등을 발표했다. 하지만 기업들은 인센티브보다 각종 규제 철폐가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A 대기업 관계자는 “인센티브보다 해외에 없는 갈라파고스 규제 환경이 더 큰 부담”이라며 “공장이나 건물을 짓는 것도 쉽지가 않다”고 토로했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사례가 대표적이다. SK하이닉스는 120조 원 규모의 투자를 결정했지만, 2019년 부지 선정 이후 전력과 용수 공급, 토지수용 등의 문제로 4년 넘게 표류하다 착공까지 6년을 허비했다. 대만 TSMC가 미국과 일본에서 3~4년 만에 착공부터 양산까지 마친 것과는 대조적이다.

북미에 생산법인을 둔 전자 제조기업 B사 관계자는 “리쇼어링 하게 된다면 인재가 몰려있는 수도권으로 들어가고 싶은데, 권역 규제로 신·증설이 어렵다”고 말했다.

유일호 대한상공회의소 고용노동팀장은 “기업들이 해외로 나간 이유는 시장 개척, 인건비 절감, 우수 인재 확보 때문“이라며 ”국내로 돌아와도 원하는 인력을 구하기 어렵고 현지에서 같이 근무했던 인재를 데려오려 해도 비자 문제 등 제약이 많다”고 지적했다.

높은 인건비도 부담이다. 한국의 평균 임금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상위권에 속한다. 특히 제조업 분야에서는 숙련된 인력에 대한 비용이 경쟁국에 비해 높다. 반면 베트남이나 인도는 저렴한 인건비를 무기로 한국 기업들을 유혹하고 있다.

유 팀장은 “동남아시아 지역과의 인건비 격차를 메우려면 생산성을 높여야 하지만, 한국은 근로시간 제한 등 노동법이 경직적이어서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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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시행 중인 중대재해처벌법과 야당이 추진 중인 노란봉투법, 상법 개정안 등도 기업하기 어렵게 만드는 대표적인 장애물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은 경영진에게 산업재해 발생 시 형사처벌 책임을 묻는 조항이다. 기업 입장에선 공장 가동 자체가 리스크가 된다. 노란봉투법은 파업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한다. 상법 개정안은 감사위원 분리 선임 의무화로 경영권 방어를 어렵게 만든다.

입법 지연도 문제다. 반도체 산업 지원을 위한 ‘반도체 특별법’은 여야가 ‘연구개발(R&D) 인력에 주 52시간 적용 제외’ 조항을 두고 합의하지 못해 국회에 수개월째 계류 중이다.

법인세 등 세제 부담이 높은 점도 장벽이다. 지난해 더불어민주당의 반대에 막혀 법인세 최고세율을 1%포인트(p) 인하하는 데 그치면서 한국의 법인세 최고세율은 24%로 묶였다. 명목 법인세율은 26.5%로 전 세계 141개국 중 44번째인데 미국과 프랑스, 이스라엘 등보다 높다.

재계 관계자는 “리쇼어링을 실현하려면 단기 지원책을 넘어 근본적인 제도 개혁이 필요하다”면서 “규제 완화, 노동시장 유연화, 기업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는 법제 환경 정비 등 근본적인 제도 개혁 없이는 ‘리쇼어링’은 계속해서 구호에만 머물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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