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 현지화 지연에 원가 부담…핵심광물 주도권은 中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전방위적 관세 정책으로 ‘중국 대 비(非)중국’으로 양분된 배터리 공급망이 더욱 고착화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문제는 핵심광물 주도권은 여전히 중국이 쥐고 있고, 셀 업체들과 달리 소재업계는 아직 현지 생산 체계를 갖추지 못했다는 점이다.
8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LG에너지솔루션·SK온·삼성SDI 등 국내 배터리 3사는 올해부터 미국 내 생산 체제를 본격화한다. 장기간 투자 끝에 구축한 현지 생산 기반을 토대로 관세 여파를 최소화하겠다는 전략이다.
이 같은 전략에 힘을 실어준 건 조 바이든 전임 행정부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이다. 핵심광물과 배터리 부품을 미국 또는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국가에서 조달해야 하고, 최종적으로 북미에서 조립된 전기차에 최대 7500달러의 세액공제 혜택을 제공하는 내용이 골자다.
여기에 해외우려기업(FEOC) 규정으로 ‘탈중국’ 공급망 구축에도 속도를 냈다. 중국 기업은 물론 중국 기업 지분 25% 이상인 기업까지 FEOC로 규정해 보조금 지급을 제한했다.
중국 업체들의 미국 전기차 배터리 시장 진입이 거의 불가능했던 점을 고려하면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 역시 탈중국 공급망 재편을 더욱 앞당길 공산이 크다. 에너지저장장치(ESS)용 배터리 시장에서도 고율 관세를 맞은 중국산 제품의 가격 경쟁력은 더욱 떨어질 전망이다.
그러나 셀 업체와 달리 소재·원재료 공급망은 여전히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LG화학, 에코프로비엠, 포스코퓨처엠 등이 북미에 생산 기지를 짓고 있지만 내년이 돼야 상업 생산에 들어간다. 당장은 한국 등에서 소재를 수출해야 하는 상황이다.
iM증권은 한국에서 공급되는 양극재, 음극재, 분리막에 25% 관세가 부과되면 셀 업체들의 생산 원가가 17% 상승할 것으로 추정했다. 이 경우 셀 업체의 수익성 악화가 불가피하다. 비용 부담을 완성차 업체에 전가한다면 전기차 가격 상승으로 이어져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이 예상보다 길어질 수 있다.
배터리업계 관계자는 “각국의 보호무역주의 기조가 강화할수록 현지 생산 거점을 구축한 배터리 기업들에는 기회가 될 수 있다”면서도 “다만 단기적으로 관세 영향을 무시하긴 어렵고, 전방의 전기차 시장 회복 여부도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핵심광물 공급 리스크도 변수다. 소재업계는 호주, 캐나다, 아프리카 등으로 공급망을 다각화하고 있지만 여전히 중국 의존도가 만만치 않다. 미국이 FEOC 규정에 중국산 흑연 적용을 2년 유예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중국이 미국의 관세 정책에 대한 보복 조치로 핵심광물 수출 통제를 실시하며 자원을 무기화하는 점도 불안요인이다.
정원석 iM투자증권 연구원은 “현재 국내 배터리 셀·소재 업체들은 출하량과 수익성 등 전반에서 불확실성이 확대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관세, 보조금, 공급망의 정치적 변수 등 복합적인 리스크 요인이 실적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