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의날 기념 토론회…의사 이외 6개 직종 단계적 기준마련 요청
의료인력수급추계위원회법(보건의료기본법)이 국회를 통과한 가운데 ‘양적 확충’과 ‘이윤 극대화’에 매몰되지 않는 적정 인력기준에 대한 요구가 높다. 정원만 늘리는 것으로는 의료서비스를 개선할 수 없으며, 병원의 인건비 절감이 환자 안전을 위협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국회 건강과 돌봄 그리고 인권포럼은 7일 제53회 보건의날을 맞아 서울 영등포구 국회에서 물리치료사, 임상병리사, 응급구조사를 비롯해 11개 전문직능단체 및 시민단체와 함께 ‘올바른 의료개혁을 위한 보건의료 적정인력 기준의 필요성과 제도화방안’ 토론회를 개최했다.
전문가들은 의사뿐 아니라 병원에서 일하는 다양한 전문직들의 적정 인력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준 인하대병원 예방관리과 교수는 “의료서비스는 다학제적인 접근이 이뤄져야 하는데 인력기준과 관련해서는 의사에 대한 논의만 집중되고 있다”라며 “의사만 있으면 문제가 다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임 교수에 따르면 중환자실은 환자 1명당 최소 5명의 간호사가 필요하며, 응급 중증환자 이송에는 응급의학과 전문의와 간호사, 1급 응급구조사가 팀으로 움직여야 한다. 중증 환자의 심장과 폐의 기능을 대신해주는 에크모(ECMO)는 훈련된 체외순환사와 전문 간호사가를 확보하지 못하면, 장비가 있어도 무용지물이다.
적정 의료인력의 의미를 재정의해 양적·질적 확충을 도모해야 한다는 것이 임 교수의 견해다. 사회적 조건과 환경에 따라 ‘적정’의 의미가 달라질 수 있으며, 적정 인력 기준은 공론장을 통한 사회적 합의 과정에서 결정해야 한다. 양적 공급에만 집중하는 것으로는 사회적 합의를 도출할 수 없으며, 양성과 관리를 포괄하는 장기적·포괄적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정책 구상에 다양한 병원노동자와 환자들이 참여해야 한다는 조언도 덧붙였다. 임 교수는 “환자와 노동자보다 행정관료와 전문가들의 영향력이 크며, 병원의 손익이 환자와 노동자의 이해를 압도하는 상황”이라며 “정책 결정 과정에 환자와 국민의 참여는 전제 조건이 돼야 한다”라고 말했다.
병원노동자들은 9.2노정합의에 따라 적정 인력기준부터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보건의료노조는 2021년 정부와 노정합의를 체결하면서 간호사, 간호조무사, 방사선사, 임상병리사, 물리치료사, 작업치료사 등 6개 직종부터 단계적으로 적정 인력기준을 수립하기로 했지만, 아직 제도 변화는 없다.
현행 의료법은 의사와 간호사 등 일부 직종에 대한 인력 기준을 명시하고 있지만, 불충분하거나 모호해 현실과 맞지 않고 준수 여부를 평가하기도 어렵다. 또한 의료기관은 인건비 감축 기조에 따라 법률 위반 소지가 없는 최소 인원만 배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정재수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기획실장은 “실태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추가 논의한다던 보건복지부는 지난 3년 동안 무엇을 했느냐”며 “적정 인력기준을 제도화하고 의료기관 정원을 관리해 의료 질을 높이고 환자 안전을 도모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한편 4월 7일 보건의날은 국민 보건의식을 향상하고 보건의료 및 복지 분야의 종사자를 격려하기 위해 국민건강증진법에 따라 제정된 법정 기념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