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말 25조 육박…3년새 3배
기한 내 준공 못하면 신탁사가 모든 책임
부동산 시장 장기 침체로 부실 확산
대손충당금·신탁계정대여금 급증
우발채무 위험 커져 신용등급 줄하향
부동산신탁사들이 수익성을 높이려고 책임준공형 관리형 토지신탁(책준형 토지신탁)을 크게 늘린 것이 부실의 도화선이 됐다. 업계 전문가들은 책준형 신탁 사업 규모가 클수록 손실 및 부실 규모가 큰 것으로 진단했다. 부동산 책준형 토지신탁은 부동산 호황기에 높은 수수료를 받을 수 있는 사업'으로 여겨졌지만, 시장의 장기 침체로 ‘부실폭탄’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책준형 토지신탁은 사업 시행자가 신탁사에 토지를 맡기고, 신탁사가 시공사와 협력해 개발을 추진하는 방식이다. 시공사가 약속한 기한 내에 책임준공을 마치지 못하면 신탁사가 금융비용 등 모든 책임을 떠안는 구조다. 리스크가 큰 대신 수수료가 높아 한 때 신탁사에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주목을 받았다. 국내 14개 부동산신탁사의 책준형 토지신탁 총잔액은 2023년 말 기준 약 24조8000억 원에 달한다. 2020년 말 8조4000억 원에서 3배로 늘었다.
책준형 토지신탁은 시공능력과 자금력이 떨어지는 중소형 건설사나 지방 사업장이 주요 영업 대상이다. 최근 부동산 경기 악화로 지방 사업장이 경쟁력을 잃고, 중소 건설사가 폐업이나 회생절차에 들어가는 등 정상적인 공사가 불가능해지는 사례가 늘고 있다. 부동산 경기 침체로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이 막히자 유동성 문제로 사업이 지연되거나 중단되는 경우들이다. 이 때문에 신탁사들은 미회수 채권이 증가하는 등 부담이 가중됐다.
부동산신탁사들은 대손충당금 규모를 급격히 늘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는 금융권 전반의 리스크로 전이되는 악순환을 초래한다. 지난해 신탁사의 대손충당금 잔액은 1조8096억 원으로 전년(8803억 원) 대비 1조 원 가까이 늘었다. 대손충당금이 가장 많은 곳은 교보자산신탁으로 1029억 원에서 3476억 원까지 증가했다. KB부동산신탁도 1590억 원에서 3441억 원으로 늘었다. 신한자산신탁은 209억 원에서 2269억 원으로 급증했다. 지난해 금융당국으로부터 경영개선명령을 받은 무궁화신탁도 223억 원에서 900억 원으로 증가했다.
대손충당금이 급증한 이유는 시공사의 유동성이 부족해지면서 자기자본으로 사업비를 빌려주는 신탁사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최근 신탁사가 자기자본으로 한계 시공사에 대여한 신탁계정대여금(신탁계정대)은 2023년 4조8551억 원에서 지난해 7조7016억 원까지 불어났다. 신탁계정대는 부동산 신탁사가 사업비 조달을 위해 고유계정에서 신탁계정으로 대여한 금액을 의미한다. 부도 등으로 시공사가 준공 기한을 지키기 어려운 경우 신탁사는 신탁계정대를 투입해 사업비를 조달한다. 추후 이 금액을 회수하지 못하면 신탁사의 손실로 잡힌다.
신탁계정대 중 요주의이하 자산은 6조1120억 원으로 전체의 79.3%에 달한다. 100만 원 중 80만 원은 연체가 되고 있다는 뜻이다. 신탁계정대는 △정상 △요주의 △고정 △회수의문 △추정손실 등 5단계로 평가된다. 요주의는 1~2개월 연체해 주의를 요하는 여신을 의미한다. 3개월 이상 연체한 고정이하부터 부실자산으로 분류한다.
책준형 토지신탁과 관련한 우발부채 위험이 커지면서 신탁사들의 신용등급도 줄줄이 하향 조정됐다. 지난 1월 NICE신용평가는 부동산신탁사 2024년 하반기 정기평가를 통해 신한자산신탁의 단기 신용등급을 'A2'에서 'A2-'로 하향 조정했다. 또 코리아신탁의 장기 신용등급 전망을 'BBB+, 안정적'에서 'BBB+, 부정적'으로 낮췄다. 금감원 관계자는 “책준형 토지신탁은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 충분한 대응 여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