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脫중국'에 갇힌 가전…"출구가 없다"[공급망 전쟁의 서막②]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과거 리얼리티 쇼 프로그램에서 외쳤던 ‘너는 해고야(You are fired)’가 현실이 됐다. 확성기로 경고만 날리던 ‘관세 부과’가 전 세계 국가들을 대상으로 실제 ‘발사(fire)’된 것이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미국의 상호관세 부과를 놓고 ‘뒤집힌(inverted) 세계’라고 표현했다. 뒤집힌 세계는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에 직격탄을 날렸다. 2018년 시작된 미중 무역갈등, 2019년 일본의 수출규제에 이어 한국기업들은 관세발(發) 공급망 전쟁 소용돌이에 다시 휘말렸다. 공급망은 인증과 같은 절차적인 부분을 새롭게 받아야 하기 때문에 재편이 쉽지 않다. 생산라인 구축 등에도 막대한 시간과 비용이 집행된다. 본지는 미국 관세 정책에 따른 기업들의 공급망 현주소를 분석하고, 현실적 해법을 모색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TVㆍ스마트폰ㆍ모니터 현지 생산
멕시코 현실적 대안 거론되지만
수년 걸리고 지속 가능 불투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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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일(현지시간)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상호관세를 발표하고 있다. (워싱턴D.C./AFP연합뉴스)

베트남은 국내 제조기업들, 특히 가전회사들의 핵심 생산 거점이다. 이번에 미국 정부가 베트남산 제품에 최대 46%의 관세를 부과하며 삼성·LG전자를 비롯한 세트 업체와 부품사들까지 직접적인 타격이 불가피해졌다. 상호관세 적용 대상에서 제외된 국가에서 생산하면 된다는 단순한 해법도 제기되지만, 생산 거점 선택지가 줄었다는 것 자체가 기업들에는 제약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미·중 갈등을 피해 중국 밖을 나서려 하지만, 마땅한 출구도 없다는 게 문제다.

7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삼성전자 디바이스경험(DX) 부문의 TV·모니터 등은 멕시코, 베트남, 브라질, 헝가리 등에서 생산된다. 스마트폰은 베트남과 인도, 브라질 등에서 제조 중이다. LG전자는 미국, 태국, 중국에서 주요 가전을 생산하고 있으며, TV 등 디스플레이 제품은 멕시코, 폴란드, 인도네시아, 중국에서 만든다. 자동차 부품은 베트남, 중국, 오스트리아 공장에서 조달한다.

이 가운데 베트남은 유독 우리 기업들이 생산 활동을 하기 좋은 지역으로 꼽힌다. 다른 신흥국들과 비교해 인프라와 사회 분위기가 상대적으로 안정적이고, 2015년 발효된 한·베트남 자유무역협정(FTA) 이후 투자 여건도 크게 개선됐다. 삼성전자는 베트남을 전략적 스마트폰 생산국으로 삼았고, LG전자 역시 하이퐁 지역에 휴대폰과 백색가전 생산기지를 구축했다.

문제는 삼성·LG전자와 함께 베트남 현지에 동반 진출한 수십 개의 국내 부품업체들이다. 이들은 세트업체의 주문을 받아 현지에서 플라스틱 몰딩, 모터, 인버터 등 핵심 부품을 생산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베트남에 대한 46% 관세는 기업들에게는 치명적이다. 관세 부과로 세트업체들이 생산량을 조절하거나 생산거점을 이전하게 될 경우 이들 협력업체 역시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다. 당장 다른 국가의 생산 비중을 확대하는 등의 전략 조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점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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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전자의 베트남 '하이퐁 캠퍼스' (사진-LG전자 뉴스룸)

업계에서는 완전히 막힌 길은 아니라고 본다. 국가별 관세율이 다르기 때문에 베트남 외에 생산지 비중을 조정해 비용 부담을 분산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가장 현실적인 대안은 멕시코 생산 확대다. 트럼프 행정부는 한때 멕시코산 제품에 대해 25% 관세 부과를 예고했지만, 2일(현지시간) 돌연 그 계획을 철회하고 멕시코를 관세 부과 대상에서 제외했다. 베트남에서 부담이 커지면, 멕시코에서 생산하자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공장 부지 확보와 인프라 구축, 숙련 인력 확보 등 생산기지를 옮기는 데는 수년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은 걸림돌이다.

또한 지속 가능성이 불투명하다는 점도 문제다. 트럼프 대통령이 언제라도 멕시코에 대한 추가 관세 방침을 밝힐 수 있어 기업들의 전략 수립이 어렵다.

관세 불확실성이 커지자 부품사들도 움직였다. 삼성전기는 기존에 추진하던 멕시코 공장 투자 계획을 일시 보류했으며, LG이노텍은 멕시코뿐 아니라 베트남, 인도네시아, 한국 등으로 생산지를 분산하는 방안을 고객사들과 협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베트남 외의 선택지는 많지 않다. 가전 기업들이 주요 생산 기지를 둔 인도(26%), 인도네시아(32%), 중국(34%) 등도 이미 미국의 고율 관세 대상 국가에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관세 정책 기조는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며 “결국 어디에서 생산하든 미국 시장에 진입할 때 높은 관세를 피하기 어려운 구조가 됐다. 최종적으로는 이 피해가 소비자에게 전가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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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에서 삼성 깃발이 펄럭이고 있다. (조현호 기자 hyunh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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