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장 손실 책임 떠안아…하청·지역경제까지 연쇄 타격[선 넘은 신탁사 부실 中]①

독이 된 책임준공

고수익 노리고 무분별하게 확대
무궁화신탁 작년 9건 준공기한 넘겨
영업손실 1위 교보자산은 12건
금융당국, 개선명령 등 조치 요구
"수시검사 착수·모니터링 지속"

부산 사하구 장림동 829번지 부산제네시티 건설 현장. 지상 20층, 304가구 규모의 오피스텔은 2023년 12월 완공될 예정이었지만 1년 4개월째 입주가 미뤄지고 있다. 공사 대금도 8개월째 지급되지 않고 있다. 현장에서 일한 200여 명의 노동자, 30곳의 하청업체는 돈 한 푼 받지 못할 처지에 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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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부산제네시티 공사 중단 사태는 책임준공을 맡은 무궁화신탁의 경영 악화가 도화선이 됐다. 무궁화신탁이 경영악화에 처한 건 ‘책임준공형 관리형 토지신탁(책준형 토지신탁)’을 크게 늘리면서다. 건설 경기 악화로 공사 지연과 사업장 부실이 현실화하면서 여러 사업장에서 책임준공의무를 이행하지 못해 대규모 손실을 떠안았기 때문이다.

 

부실은 화마처럼 번졌다. 시행사 자금난으로 공사비 지급이 지연됐고, 공사가 중단됐다. 일부 하청업체에 공사 대금이 미지급되면서 시공사 부실로 확대됐다. 책임준공을 맡은 신탁사는 준공 책임 부담으로 충당금을 크게 늘리면서 리스크가 커졌다. 건설 현장에서 일하던 현장 일용직들은 수개월의 급여를 받지 못했다. 인테리어, 배관, 철근 업체들은 줄줄이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무궁화신탁은 작년 3분기 기준 전체 프로젝트파이낸싱(PF)사업장 67개 중 35개 사업장을 책준형으로 운영했다. 2019년 책준형 사업 규모는 679억 원에 불과했지만, 2022년 1조 원까지 늘어났다. 수익성을 위해 책준형 사업을 무분별하게 늘리면서 유동성 위기를 맞았다. 책임준공기한을 지난 사업장은 총 9건이다. 이 중 하남 풍산동 사업장은 소송 중으로, 무궁화신탁을 믿고 사업장에 빌려준 PF 대출액이 195억 원 규모다.

금융위원회는 지난해 11월 무궁화신탁에 적기시정조치 가운데 가장 강한 경영개선명령을 내렸다. 적기시정조치란 금융회사가 건전성이 악화해 일정 기준에 미달할 경우 영업 정지 등 적절한 경영개선조치를 하도록 금융 당국이 요구하는 조치다. 금융투자업 규정에는 금융사 영업용순자본비율(NCR)이 150% 이하로 떨어지면 적기시정조치를 내린다. NCR은 총위험액 대비 영업용순자본의 비율로, 신탁사 재무건전성을 가늠할 때 사용하는 지표다. 당초 무궁화신탁은 9월 말 기준 NCR이 125%라고 공시했다. 하지만 8월부터 이뤄진 금융감독원 검사 결과 이 수치가 69%로 더 낮은 것으로 나타나 가장 강한 수위의 제재가 내려졌다.

책준형 사업장 부실이 심각해지면 금융당국은 신탁사들을 대상으로 검사를 확대하고 있다. 교보자산신탁은 지난해 영업손실 규모가 3120억 원으로, 14개 신탁사 중 가장 큰 손실을 기록했다. 공시에 따르면 지난해 교보자산신탁의 책준형 사업장은 27건이다. 같은 기간 부산시 기장군 공동주택 신축사업 등 총 12건의 책준형 토지신탁사업 시공사의 책임준공의무가 미이행됐다.

상황이 심상치 않자 금감원은 지난해 11월 교보자산신탁을 대상으로 책준형 사업장과 관련해 2건의 경영유의 제재(△자산건전성 분류 미흡 △대손준비금 최대 50억 과소 적립)를 결정했다. 교보자산신탁이 업계 후발주자로 시장점유율을 늘리는 과정에서 유동성 위험에 노출됐으나 이를 적극적으로 관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부동산개발 자산관리 업무를 부수 업무로 신고하지 않은 것에 대해 2400만 원의 과태료도 부과했다.

금감원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신한자산신탁, KB부동산신탁, 우리자산신탁 등 주요 신탁사에 대한 수시 검사를 진행 중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지난해 말부터 책준형 토지신탁 관련 우발채무의 현실화 가능성이 높은 부동산 신탁사에 대한 수시검사에 착수한 상태”라며 “올해 부동산 신탁사의 토지 신탁과 관련한 건전성 감독을 강화하고 사업장별 위험 요인을 지속해서 모니터링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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