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시 체계 미흡에 녹색여신 실적 ‘제각각’
금융사 ESG 목표, 수년째 그대로…변화 부족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금융’은 ‘요란한 빈수레’에 그칠 공산이 크다. 쏠림과 외면, 변화에 둔감한 현실적인 문제들이 개선되지 않으면 ‘공중누각’에 불과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7일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KoSIF)과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발간한 ‘한국 ESG 금융백서’에 따르면 2023년 말 기준 민간금융사의 ESG 금융 규모는 424조9000억 원으로 전년(390조2000억 원)보다 34조7000억 원 증가했다.
외형 성장은 이뤘지만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기형적이다. 영역별로 △환경(E) 90조 원(21.2%) △사회(S) 289조4000억 원(68.1%) △거버넌스(G) 3조4000억 원(0.8%) △ESG 통합 42조1000억 원(9.9%) 등이다. 사회 부문이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했다.
근본적인 원인은 상생금융이다. 정부, 정치권이 금융사의 사회적책임을 요구하며 누른 풍선이 상생금융쪽만 삐죽 튀어나온 것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ESG 개념이 등장하기 전부터 사회공헌 활동을 이어온 만큼 기존 경험과 데이터가 축적된 사회 분야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면서 “당장 성과를 내기 용이하고 수치로 표시할 수 있는 점도 쏠림에 영향을 끼친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쏠림 현상은 '외면'의 부작용으로 이어진다. 환경 부문 공시 기준이 명확하지 않고 자율공시 체계로 운영되면서 금융사들은 관련 정보를 선택적으로 공개하고 있다. 지속가능경영보고서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5대 금융그룹(KB‧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ESG 보고서를 보면 녹색여신을 따로 집계하고 있지 않거나 집계 방식이 제각각이다. ESG 금융이 탄소중립 투자 등 기업의 환경 개선에 얼마나 기여했는지 쉽게 알 길이 없는 것이다.
기준과 가이드라인의 부재는 녹색여신 확대의 주요 걸림돌로 지적되고 있다. 2023년 말 기준 12개 민간 은행의 녹색여신 잔액은 31조7000억 원으로 총 대출자산의 1.9%에 불과하다. 금융권 관계자는 "녹색금융 전환금융 등의 실적을 집계하는 기준이 각사마다 다르기 때문에 개별사의 변동추이가 아니라 각사를 비교하면 오류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ESG 금융의 환경 부문 투자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기업들의 공시 체계 개선도 필요하다. 금융사 입장에서 금융배출량이 핵심 지표지만 기업들이 관련 데이터를 제공하지 않고 있다. 그나마 공개된 데이터는 2~3년의 시차가 존재해 무의미하다. 금융배출량은 금융회사가 투자·대출 등 금융 활동을 통해 거래 상대의 탄소배출에 간접적으로 기여한 부분을 말한다.
현석 연세대 환경금융대학원 주임교수는 "대출을 받는 기업들이 이산화탄소를 얼마나 배출했는지 계산해 공시해야 하지만 잘 이뤄지지 않고, 은행이 공시하려고 해도 기업이 정확한 데이터를 주지 않으면 계산 자체가 어렵다"고 지적했다.
ESG 금융의 지속가능 성장을 위해서는 패러다임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시각이 있다. 무엇보다 주요 투자 대상인 기업들을 중심으로 올바른 생태계 조성이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기업분석연구소 리더스인덱스에 따르면 2020년 ESG 경영이 본격화한 지 4년이 지났지만 국내 대기업(361개사 기준)의 ESG위원회 설치율은 절반 수준이다. 위원회 회의 수는 분기당 1회에 못미친다.
금융사들의 기계적인 ESG 금융 보고 관행도 개선점으로 꼽힌다. 매년 발간하는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 KB‧하나‧우리금융은 4년간, 신한금융은 3년간 동일한 ESG 금융 목표를 제시했다.
박남영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책임연구원은 “국내 민간 금융기관들은 ESG 금융 목표를 수립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외부 요인과 내부 역량 부족에 따른 부담이 크다”며 “민간 ESG 금융의 성장 가능성을 고려해 정책적 지원을 확대하고 녹색여신 관리지침 등 기존 정책의 실효성을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