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있지만 방패는 없다…경영권 견제·방어 균형 맞춰야” [뉴노멀 경영권 분쟁 下]

기업 경쟁력 훼손할 수 있는 적대적 M&A
경영권 견제 수단 있으나 방어 수단은 부족
포이즌필·차등의결권 등 제도 필요성 부각
상법 개정 필요 사안으로 국민적 합의 필요

고려아연와 MBK파트너스·영풍 연합군 간 경영권을 놓고 벌이는 치열한 공방전이 어느새 6개월째에 이르렀다. 갈수록 복잡하게 꼬여가고 있는 사태는 서로 치고받는 소송전의 판결에 따라 장기화 가능성도 점쳐진다. 경영권 및 주주 간 분쟁은 재계의 ‘뉴 노멀’이 됐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비일비재해졌다. 경영권 분쟁은 승자에 관계없이 기업 자체에 나쁜 결과를 초래했다. 분쟁에 몰입하면서 막대한 자금이 낭비되고 중요한 의사결정을 놓치는 사례도 생겨났다. 문제는 향후 이같은 다툼이 더욱 본격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야당이 추진한 상법개정안과 3월 재계의 정기 주주총회를 앞두고 화두로 떠오른 집중투표제 영향이다. 기업들은 해외 투기자본의 타깃이 되거나 소액주주에 휘둘릴 가능성이 커졌다고 우려한다. 현재 진행 중이거나 과거에 발생한 경영권 분쟁 사례를 통해 국내 산업에 미치는 영향과 해법을 짚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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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손미경 기자 sssmk@

최근 늘고 있는 경영권 분쟁은 동전의 양면처럼 긍정적, 부정적 측면을 모두 가지고 있다. 기존 경영진이 느슨한 경영을 하고 있다면 외부의 견제를 통해 기업 가치를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선 긍정적이다. 하지만 기업 성장이 아닌 단기적인 차익 실현을 목적으로 이뤄지는 적대적 인수합병(M&A) 시도 등은 기업 경쟁력에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길 수도 있다는 점에서 우려를 키운다.

권재열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12일 본지에 “방만하게 운영되고 있는 기업의 경우에 적대적 M&A를 통해 손바뀜이 일어나는 건 경제학적으로 보면 사회적인 효율이 높아지는 것”이라면서도 “최근 행동주의 펀드들이 내실이 탄탄한 우량 기업들의 경영권을 빼앗으려고 하는 것은 오히려 기업의 경쟁력을 훼손할 수 있어 부정적 영향이 더 크다”고 짚었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도 “경영권 분쟁이 발생하면 단기적으론 경영진이 소송이나 방어 전략에 집중하면서 기업 운영에 소홀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며 “장기적으론 기업이 방어를 위해 무리한 자사주 매입을 시도해 재무구조가 약해지거나, 연구개발(R&D)이나 신사업 투자가 위축되면서 기업 경쟁력이 악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우리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경영권 견제와 방어의 적절한 균형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특히 국내엔 경영권을 공격할 수 있는 수단은 다수 존재하지만, 방어 수단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창은 있지만 방패는 없다’는 지적이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행동주의자들이 점점 적극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하면서 기업들의 불안감이 높아지고 있다”면서 “하지만 우리나라는 기업을 위한 방어책은 하나도 없고 공격 수단은 다른 나라와 달리 너무 잘 갖춰진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권 교수도 “한국에선 경영권 방어 수단이 자사주를 활용하는 것밖에 없다. 다른 선진국과 비교하면 방어 수단이 굉장히 미흡한 실정”이라며 “만약 경영권을 방어할 수 있는 수단이 갖춰진다면 지금처럼 여론전을 펼치거나 소송이 난무하는 일도 줄어들 것”이라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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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오픈AI 달리)

기업의 경영권 방어를 위해 ‘차등의결권’과 ‘포이즌필’(신주인수선택권) 등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차등의결권은 주당 부여되는 의결권 수가 다른 주식을 말한다. 경영진 등이 보유한 특정 주식에 더 많은 의결권을 부여해 경영권을 방어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포이즌필은 신주 발행을 통해 적대적 인수자의 지분 희석을 유도하는 전략이다.

김 교수는 “미국, 일본 등은 차등의결권을 보장하고 있어 창업주나 경영진이 적은 지분으로도 경영권을 유지할 수 있다”며 “적대적 M&A 공격이 들어올 때 기존 주주들에게 저가에 신주를 매입할 기회를 줘 적대적 인수자의 지분율을 희석하는 포이즌필도 도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포이즌필이나 차등의결권 등 경영권 방어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내다봤다. 권 교수는 “포이즌필이나 차등의결권 도입은 상법 개정이 필요한 사안으로 국민적인 합의가 이뤄져야 하지만 현재로썬 요원해 보인다”면서 “실제 국내 우량 기업들이 적대적 M&A 이후 무너지는 상황이 생긴다면 그때 가서야 필요성이 주목받을 것”이라고 했다.

경영권 방어 수단을 확대하는 것은 최근 상법 개정 방향과 상충해 시장에 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목소리도 제시됐다. 주성훈 법무법인 시헌 변호사는 “최근 상법 개정은 소액주주의 권리를 강화해 주주 행동주의를 활성화하는 방향으로 논의되고 있는데, 만약 포이즌필을 도입하게 되면 제도가 중구난방이 될 수 있다”며 “적대적 M&A는 상황에 따라 필요한 경우도 있으므로 큰 틀에서 상법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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