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양자택일보다 산업 경쟁력 높여야”
‘차이나 크래커’에 낀 한국 제조업은 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공식 출범함에 따라 변수를 맞게 됐다. 그간 반도체·자동차·배터리 산업은 중국의 제조업 굴기 속에서 미국 중심 공급망을 통해 방어선을 구축해 왔다. 하지만 트럼프의 ‘자국 우선주의’에 따라 글로벌 공급망 리스크가 재차 부각될 우려가 나온다. 미국의 대중 견제가 강화할수록 중국의 굴기는 거세지고, 중국에도 연결고리를 두고 있는 우리 기업들의 어려움이 커질 수 있다는 얘기다.
20일(현지시간) 취임한 트럼프 대통령은 첫날 수십 건의 행정명령을 쏟아냈다. 보편 관세와 대중 관련 조치들이 포함될 것이란 예상과 달리 이날 당장 서명하지 않았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 전부터 공언해온 만큼 시간문제라는 전망이 나온다.
법무법인 율촌은 ‘트럼프 2기 출범과 국내 산업 전망’ 보고서에서 보편 관세와 대중 관련 조치 행정명령으로 대중국 수출 비중이 높은 한국 기업들의 생산 비용이 상승하고, 공급망에 차질이 생길 것으로 예상했다. 이와 함께 반도체 등 첨단기술 산업의 미국 내 투자 압박에 따라 한국 기업들의 현지화 전략이 강화할 필요성이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전문가들은 우리 기업들이 미국의 대중 견제 상황을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경유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트럼프 대통령 취임과 별개로 자동차 산업은 미중 갈등에서 이득을 보는 측면이 있다”며 “유럽과 달리 미국 시장은 높은 관세 등으로 중국 전기차가 진입하지 못해 우리 자동차 기업들이 점유율을 높이고 있다”고 말했다.
김 선임연구위원은 “트럼프 대통령의 전기차 후퇴 정책으로 시장은 조금 위축될 수 있지만, 미·중 갈등이 심화하면서 공급망 내 중국 배제 기조가 강화하면 부품업체들에도 기회가 될 수 있겠다”고 진단했다.
또 미국과 중국의 ‘양자택일’보다 산업 경쟁력을 높이는 데 집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홍기훈 홍익대 경영학부 교수는 “기업들 입장에선 단순한 문제다”라며 “중국에서 할 비즈니스는 중국에서, 미국에서 할 비즈니스는 미국에서 하면 된다”고 했다. 홍 교수는 이어 “만약 대부분의 시장이 미국에 있다면 미국에 집중하면 되고, 양쪽에 시장을 갖고 있다면 비즈니스적으로만 접근하면 된다”고 덧붙였다.
김 선임연구위원도 “과거처럼 미중 갈등에서 한쪽을 선택한다고 해서 다른쪽이 보복하기는 어려운 구조”라면서 “중국이 미국에서 번 돈을 중국에 쓰라고는 할 수 없고, 오히려 우리와의 협력을 강화하려고는 할 수 있겠다”고 말했다.
중국 시장을 개척해야 한다는 제언도 나왔다. 박태호 법무법인 광장 국제통상연구원장은 “동맹국은 미국이다. 첨단산업 관련해 중국에 수출을 제한하는 것들은 지켜줘야 한다”면서도 “베트남이나 인도에서 (제품을) 만들어서 중국 시장에 팔 수 있는 것은 팔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원장은 “중국 의존성을 줄여야 한다는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며 “광물, 원자재 등 생산 측면은 줄여야 하지만 중국 시장은 규모나 거리 면에서 유리하기 때문에 맥시멈(최대한)으로 이용해야 한다”고 부연했다.
홍 교수는 또 “외교적으로는 어려운 상황이 올 것”이라며 “중국과 미국이 경쟁하며 관세 장벽을 높이면 우리는 어떻게 할 거냐는 문제가 있고, 양자 사이에서 줄타기하다가 양쪽에서 외면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중심을 잡아서 노선을 확실히 해야 한다”며 “이런 상황에서 양비론을 가져가는 건 어려움을 키운다. 다만 변수에 따른 유연성이 필요하다”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