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의대 증원 예정대로…의사 단체 “신입생 모집 중단” 거듭 촉구
윤석열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되면서 병원가와 의과대학에 당분간 혼란이 심화할 것으로 보인다. 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 시범사업과 의대 증원 등 윤 대통령이 밀어붙였던 의료개혁 정책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의료계의 구심점인 대한의사협회 회장마저 공석인 상황이다.
16일 정부와 의료계에 따르면 대통령 탄핵 정국으로 병원과 의대를 둘러싼 혼란을 수습할 대책이 요원해졌다. 정부는 물론, 의협도 임현택 전 회장 불신임 이후 비대위 체제로 전환돼 의·정 양측의 최종 책임자가 모두 사라진 상황이다.
의료개혁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는 기존 정책을 안정적으로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이날 1, 2차관과 실장, 주무국장 등이 참여하는 긴급간부회의를 열고 “이미 발표한 지역‧필수의료 강화대책들 또한 국민과의 약속에 따라 일관성 있게 충실히 이행해야 한다”며 “지난 10월 착수한 상종 구조전환 시범사업을 착실히 추진하되, 의료 현장 목소리를 들어 지속적으로 보완‧발전시켜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에 따라 조 장관과 박민수 복지부 2차관 등의 거취도 예측하기 어렵다. 조 장관은 비상계엄 선포 전 열린 ‘5분 국무회의’에 참석한 것으로 확인돼 국무위원들 가운데 처음으로 12일 검찰 소환조사를 받았다. 조 장관은 비상계엄 선포 이튿날인 4일 사의를 표명한 바 있다.
병원가와 의대를 둘러싼 불안감이 커지는 양상이다. 대통령 직무가 14일부로 정지되면서 책임자 없는 개혁을 이어가게 됐다. 현재 전국 47개 상급종합병원 중 44곳이 구조전환 시범사업에 참여해, 중증 진료 비중을 70%까지 높이고 일반병상은 최대 15% 감축해야 한다. 의대들은 이달 13일 3119명의 수시모집 최초 합격자를 발표했으며, 31일 정시 원서 접수를 시작한다.
의료개혁 정책을 논의해왔던 의료개혁특별위원회 역시 병원협회, 중소병원협회, 국립대병원협회 등 의료계 단체가 8일을 기해 줄줄이 탈퇴하며 사실상 제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됐다.
의사들은 의료대란 책임자를 처벌하고, 의대 신입생 모집을 중단해야 한다는 주장을 반복 중이다.
의협 비대위는 14일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에 대한 환영 입장을 밝히면서 “의료 농단에 앞장서며 정권에 부역했던, 그리고 전공의와 의사들을 처단하겠다는 계엄 포고령을 작성한 자를 색출해 강력한 처벌을 해야 한다”라며 “의대 교육 붕괴를 막기 위해 2025년 의대 신입생 모집 역시 즉각 중단해야 한다”라고 촉구했다.
전국의과대학 교수 비상대책위원회(전의비)도 같은 날 성명서를 내고 “의대 증원이 이대로 진행돼 고착화된다면 의학교육과 의료 정상화의 길은 점점 멀어진다”라며 “윤석열의 사이비 의료개혁을 중지시키고 의대 증원을 원점에서 재검토해 현 사태를 수습하기를 바란다”라고 요청했다.
다만 교육부는 입시 절차가 이미 상당 부분 진행된 시점에서 신입생 모집을 중단하기는 불가능하다고 못을 박았다. 올해 6월 수험생과 의대생들이 의대 증원 변경을 승인한 한국대학교육협의회를 상대로 제기한 ‘대학입시계획 변경승인 효력정지 가처분 소송’도 대법원에 기약 없이 계류 중이다. 8월 대법원에 해당 사건이 접수된 이후 신청인들은 20회에 걸쳐 결정 촉구 서면을 제출했지만, 현재까지 사건에 관한 결정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국정 전반이 불안정한 상태에 놓이면서 의료개혁을 둘러싼 문제가 뒷전으로 밀려났다는 우려도 나온다.
강희경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소아청소년과 교수)은 “이 사건은 한국 의료시스템 및 국민의 생명과 건강이 걸린 매우 중요한 사건”이라며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은 계엄과 같이 즉흥적으로 협의 없이 진행됐음이 명백히 밝혀졌고 이미 초래된 피해가 막심한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강 위원장은 차기 의협회장 후보로 출마했다.
한 희귀질환 환자단체 관계자는 “이미 2월부터 대학병원들이 정상적으로 운영되지 않아 환자들이 공포 속에서 한 해를 보냈다”라며 “당장 환자들이 불안에 떨고 있는데 의료계 문제가 사람들의 관심 밖으로 사라진 것 같아 두렵다”라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