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증시, 투자자 엑소더스 가속화
증시 주변 자금, 지난달 말보다 2.3조 감소
미국 증시 투자로 이동…‘안갯속’ 국내 증시 전망은
국내 증시를 떠나는 투자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심지어 투자 관망을 위해 넣어뒀던 증시 대기성 자금까지 줄어들며 이탈세는 더욱 가속하는 분위기다. 비트코인 가격은 최초로 10만 달러를 돌파하고, 미국 주식은 안정적인 상승세를 보이면서 비교적 국내 증시의 투자 매력도가 떨어진 탓이다. 여기에 ‘비상계엄’ 후폭풍까지 덮치자, 당분간 국내 증시가 회복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는 시각이 늘고 있다.
8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투자자예탁금과 종합자산관리계좌(CMA), 신용거래융자를 합한 증시 주변 자금은 5일 기준 총 152조9434억 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달 말(155조2799억 원)보다 2조3364억 원 줄어든 수준이다.
증시 주변 자금이란 주식에 투자하기 위해 증권사 계좌에 잠시 대기시켜 둔 돈으로, 증시 투자 열기를 가늠할 수 있는 지표다. 적당한 대기성 자금은 투자 기회를 모색하는 투자자들의 동태를 파악할 수 있다. 다만 과도하게 늘면 투자자들이 적당한 투자처를 찾지 못했다는 의미고, 크게 줄어들면 증시에 대한 투자 열기가 뜨거워졌거나, 아예 주식 투자에 관심 자체가 끊어졌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대기성 자금 종류별로 보면 투자자예탁금은 5일 52조4692억 원을 기록했다. 현재는 소폭 상승했으나, 3일에는 49조 원대로 떨어지기도 했다.
CMA 잔액은 같은 날 84조1606억 원을 기록했다. 연초(74조7814원)보다는 늘었지만, 85조~86조 원대를 기록하던 최근에 비하면 크게 줄어든 수준이다. 88조 원을 넘어서며 역대 최고치를 찍은 8월 말과 비교해도 크게 감소했다.
CMA 잔액의 감소세는 지난달 28일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인하한 영향도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단기성 자금 운용 상품이라 기준금리 인하 영향을 많이 받는 CMA 금리가 낮아지자, 투자자들이 굳이 CMA에 돈을 묶어둘 필요가 사라진 것이다.
올해 여름 20조 원을 넘어섰던 신용거래융자 잔액도 최근 16조 원대로 내려앉은 것을 보면 빚을 내서라도 투자하려는 경향도 줄었다. 5일 기준 신용거래융자 잔액은 16조3136억 원을 기록했다.
물론 증시 주변을 맴도는 자금이 줄어든 만큼, 주식에 투자한 돈이 늘어났을 가능성도 크다. 다만 최근 양상으로는 투자자들이 국내 장이 아닌 미국 장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이달 들어 개인투자자는 국내 증시에서 순매도 양상을 보였지만, 미국 주식 보관금액은 현재 1100억 달러에 가까워진 상태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국내 투자자의 미국 주식 보관금액은 지난달 1000억 달러를 돌파했다.
증권가에서는 연말임에도 국내 증시가 부진했던 데 더해 비상계엄 사태 후폭풍까지 덮쳐 당분간 투자 열기는 더욱 떨어질 것이란 평이 많다. 다른 증시와 자산군이 랠리를 보이는 만큼, 국내외 투자자 모두 국내 자산에 대한 불확실성을 회피하려는 경향이 강할 것이란 분석이다.
이재만 하나증권 연구원은 “비상 계엄령 선포 후 약 6시간 만에 계엄이 해제됐지만 당분간 국내 정치적 혼란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원화 약세 움직임은 이어질 공산이 크다”며 “국내 자산의 매력도 약화로 외국인 투자자금 유출이 불가피하며, 한국의 대외 신뢰도 약화도 원화의 디스카운트 요인”이라고 했다.
김용구 상상인증권 연구원은 “특히 중립 이하의 대내외 경기·수요 환경, 트럼프 2.0 정책 불확실성에, 이번 계엄령 선포·해제 사태 관련 한국 내부 정치 불확실성이 새로이 가세했다는 점에서 시장 상방 저항 강화와 함께 내부 정치 변수 의존적 주가 등락 흐름이 불가피할 것”이라며 “연말연시 코스피를 2400~2600포인트(p)선 박스권 내 일진일퇴 공방전 지속 가능성에 무게를 두는 이유”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