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이 투자 상품으로 변모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형태의 금융사기가 등장했다. ‘아트테크’라 불리며 논란이 된 사기 의혹들은 투자자와 작가 모두를 피해자로 만드는 이중적 구조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특히 청담동 갤러리의 900억 원대 사기 사건과 갤러리K의 1000억 원대 사기 사건은 미술품 투자의 근본적 한계와 법적 사각지대를 여실히 보여준다.
청담동 갤러리는 미술품 전시, 임대, PPL을 통한 수익창출이라는 그럴듯한 허구의 사업모델을 내세웠다. 이들은 한국미술협회의 가격확인서를 조작해 작품 가치를 최대 1억 원까지 부풀렸다.
하지만 실제로는 어떠한 수익 활동도 하지 않은 채 신규 투자금으로 기존 투자자들에게 수익금을 지급하는 전형적인 폰지 사기를 벌였다.
갤러리K는 더욱 교묘한 방식으로 파고들었다. 한국미술협회와의 공식 MOU 체결로 신뢰도를 확보하고, 유명 배우를 내세우는 등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5100명의 투자자를 현혹해 연 7~9%의 안정적 수익률이라는 미끼로 투자자들의 경계심을 무너뜨렸다.
이들의 범행 수법은 미술품 시장의 특수성을 교묘하게 악용했다. 미술품은 주식‧부동산과 달리 객관적인 가치 평가가 어렵다는 점을 이용했는데, 무명 작가들의 작품 가치를 임의로 부풀리고 허위 가격확인서를 통해 이를 담보하는 식이었다.
미술품은 유동성 낮은 탓에 투자자들은 실물 작품을 확인하기 어려웠고, 작품의 실제 거래 가능성도 검증할 수 없었다. 여기에 고급 예술 투자라는 허상이 투자자들의 판단력을 흐리게 했다.
특히 심각한 건 상황이 어려운 작가마저도 피해자로 만드는 구조였다. 갤러리K의 경우 작가들에게 지급하지 않은 미술품 대금만 300억 원에 달했다.
생계난에 시달리는 작가들에게 창작지원금이라는 명목으로 접근해 작품을 헐값에 매입하거나 대금 지급을 미루는 방식으로 이중 피해를 줬다. 232명의 제휴 작가 중 상당수는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한 채 작품만 빼앗겼다.
이 같은 범행이 가능했던 건 미술품 투자의 특성에 기인한 것으로 평가된다.
김숙정 변호사(법무법인 LKB & Partners)는 “미술품은 가치가 시장의 주관적 평가에 크게 좌우되므로 정기적인 임대수익을 기대하기 어려운 자산임에도 이들은 마치 월세형 수익상품인 것처럼 포장했다”고 지적했다.
더구나 무명작가들의 작품은 시장가치를 산정하기 더욱 모호하기 때문에 투자자들을 속이기 쉬웠다. 이 사건 자체가 단순 사기를 넘어 복합적 범죄의 성격을 띨 수 있다는 게 김 변호사의 설명이다.
김 변호사는 “미술품 가치의 고의적 부풀리기와 허위 사업모델 제시는 사기죄에 해당할 수 있고, 다수의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수신하며 원금과 수익을 보장한 행위는 유사수신행위법위반, 가격확인서 조작은 사문서위조 등이 문제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도움]
김 변호사는 갤러리 미술품 위탁판매 등 자문, 미술품 작가가 입은 사기 피해 고소대리, 유명 작곡가의 수익금 정산 소송 등을 수행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