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식품기업의 대명사로 불리는 농심의 작업현장 리스크가 심화하고 있다. 먹거리를 다루는 만큼 어느 분야보다 위생과 안전에 대한 각별한 관리가 요구되는 상황에서 임직원 사고 등 재해가 해마다 늘고 있는 것이다. 농심은 이에 주요 리스크로 임직원들의 안전보건 이슈를 포함시키고 자사와 협력사 산업재해 경감에 힘을 싣고 있다.
◇ "늘어나는 재해사고, 대형 리스크로 번질라"…해결책 다각도 고심
13일 농심의 지속가능경영보고서(2023년 발표)에 따르면 2021년부터 2023년까지 3년 간 임직원 업무상 사고재해 및 질병재해 건수는 2021년 11건, 2022년 18건, 2023년 22건으로 매년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사고가 늘면서 근로자 100명 당 발생한 재해자 비율을 뜻하는 산업재해율이 0.2%(2021년)대에서 0.4%(2023년) 수준으로 뛰었다. 근로손실재해율(LTIFR, 100만 시간 당 재해자 수)도 0.9% 수준에서 지난해 1%를 넘어섰다.
농심 소속이 아닌 협력사 등 기타 근로자들의 업무상 사고나 질병재해도 우상향 흐름을 보이고 있다. 2021년부터 2023년까지 소속 외 근로자들의 업무상 산업재해율은 0.4%대에서 0.75%대로 상승했다. 특히 지난해에는 중대재해 사망사고도 1건 발생해 그간 중대재해 전무 기록에 오점을 남겼다.
농심 측은 안전보건 이슈에 소홀할 경우 생산성 저하는 물론 기업 신뢰도에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농심은 지속가능경영보고서 내 '이중중요성 평가'를 통해 "안전ㆍ노동법 규정 위반으로 인한 산업재해 발생 시 이해관계자 신뢰도 하락과 후속조치 비용이 발생할 수 있고 노사 문제와 평판하락도 있을 수 있다"면서 "임직원 신체와 건강을 고려하지 않은 작업 환경 제공으로 인한 노동력 감소, 생산성 저하, 인재 이탈 이슈도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더 나아가 해당 리스크가 기업 재무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에 농심은 비재무 리스크 중 하나로 임직원들의 안전보건 이슈를 포함시키고 산업재해 제로화에 힘을 싣고 있다. 실제 전 업무과정에서의 최우선 가치를 '안전'으로 정하고 올해 산업재해 감소 목표치를 50%로 구체화했다. 또한 목표 달성을 위해 사업장 전반에 존재하는 유해위험 요인을 파악해 사업장 별 리스크 경감을 위한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사업장 내 '지게차 충돌방지 시스템' 도입 확산이다. 농심은 2022년 지게차 사고 예방을 위해 가동 범위 내 위험을 감지하고 스피커로 알리는 ‘지게차 충돌방지 시스템’을 3개 배송지점에 시범 도입한 것을 시작으로 지난해에는 전 배송지점에 해당 시스템을 도입했다. 또 지게차 자동 정지가 가능하도록 하는 인공지능과 딥러닝 기반 ‘지게차 속도제어 시스템’을 2개의 배송지점에 시범 도입해 사고 예방을 위한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농심은 또한 산업재해 리스크 경감 방안 중 하나로 '작업중지 권리'를 꼽았다. 작업현장이 위험하다고 판단될 경우 근로자가 스스로 작업을 중지하고 관리감독자에게 사후 보고할 수 있는 기준과 절차를 마련한 것이다. 합리적 사유로 작업을 중지한 근로자에 대해서는 불리한 처우를 할 수 없도록 관련 규정도 명문화했다.
협력사 사고 방지에 대해서도 관심을 높이고 있다. 협력사 선정 시부터 안전보건 역량을 갖춘 적격수급업체 선정할 수 있도록 평가기준을 정하고, 도급 계약 시 협력사가 이행해야 할 사항과 공동 협력 사항을 정해 산업재해 발생을 미연에 막도록 했다. 아울러 매년 두 차례 협력사 안전사고 역량을 평가해 고위험 협력사에 대한 별도조치도 진행하고 있다.
◇ 사내이사 3명ㆍ사외이사 4명…'오너' 중심 소규모 이사회 타파 과제도
한편 농심의 지배구조를 보면 사내이사 3명과 사외이사 4명으로 구성돼 있다. 농심 이사회는 위원회 설치 의무에 따라 △감사위원회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 △경영위원회 △ESG위원회 등 총 4개 위원회를 두고 있다. 감사위원회는 전원 사외이사,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사추위)와 ESG위원회는 과반 이상이 사외이사로 구성했으나 경영위원회는 3명 전원이 사내이사로 구성돼 있다.
이사회의 의장은 '오너' 신동원 회장이다. 신 회장은 농심 창업주인 고(故) 신춘호 회장의 장남으로, 신동원 회장의 사내이사 선임은 올해 3월 농심 주주총회를 거쳐 단행됐다. 당시 이사회는 신 회장의 사내이사 후보 추천 사유에 대해 “40년 이상 당사에서 근무경력을 가지고 있으며, 전략경영실 총괄, 회장 등을 역임해 식품산업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과 경륜을 지니고 있다”며 “이를 바탕으로 농심그룹의 경영전략 수립 및 실행에 지속적인 기여를 하고 있고 앞으로도 회사 경영 및 이사회 운영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돼 추천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같은 농심 이사회 구조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제기된다. 오너 중심의 현 구조가 경영진과의 상호 견제 및 균형이라는 이사회 본 취지를 훼손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농심 이사회 산하에 있는 사추위에는 신동원 회장이 직접 참여하고 있어 입맛에 맞는 이들로 이사진을 꾸릴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농심은 사추위 후보군 및 후보선정 이후 이사회 결의를 통해 후보를 최종선정하고 주주총회를 통해 사외이사를 공식 선임한다.
농심 측은 "전문성, 독립성, 다양성 기준을 고려해 선임된 4명의 사외이사가 이사회 과반수를 구성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이어 "식품산업에 대한 전문성과 경영 능력, 리더십을 보유한 신동원 회장은
이사회 결의로 의장에 선임되어 역임 중"이라며 "관련 법령에서 요구하는 자격요건을 충족하고 있는 사외이사를 중심으로 경영진에 대한 견제 역할을 하고 있는 만큼 이를 통해 이사회에서 다양한 의견이 논의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