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입 취지 벗어난 디폴트옵션 제도…원천적인 한계 개선해야
퇴직연금 실물이전 서비스로 연일 보도자료를 써내고 있는 금융권 관계자의 푸념이다.
지난달 31일 퇴직연금 실물이전 서비스가 시행됐지만, 성과는 미미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금융당국과 고용노동부가 공들인 것에 비해 매력도가 떨어진다는 이유에서다.
퇴직연금 실물이전 서비스는 시작부터 삐걱댔다. 지난달 15일로 예정됐던 시행일은 31일로 연기된 데다 일부 금융사는 연기된 시행일 마저 맞추지 못했다. 이 사실에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극노'하며 보도자료를 집어던졌다는 소문도 전해진다. 공들인 만큼 성과가 안 나올 것이 뻔하기에 차라리 엎어졌으면 하는 금융사도 있었다.
금융사도 억울할 법한 게 실물이전에 참여하는 금융사 수와 수익률 개선은 별개다. 모든 금융사에 해당하는 사전지정운용제도(디폴트옵션)가 본격 시행된 지 1년 3개월이 지났지만, 눈에 띌 만한 업권 간 이동은 없다.
오히려 원리금보장형 상품 위주인 초저위험 상품에 자금이 집중적으로 몰리면서 수익률 개선이라는 디폴트옵션 제도의 도입 취지를 벗어났다. 미국, 호주 등 디폴트옵션 도입 국가들과 달리 원리금보장형 상품을 포함한 게 원천적인 한계라는 지적이 나온다.
퇴직연금 갈아타기의 한계는 제약 조건들이다. 확정급여형(DB), 확정기여형(DC), 개인형 퇴직연금(IRP) 중 같은 유형의 퇴직연금제도로만 갈아탈 수 있다. DB나 DC의 이전은 회사가 계약을 체결하고 있는 사업자끼리만 가능하다.
실물이전 수요가 있는 고객 대부분이 은행 DC형을 증권사 DC 계좌로 옮겨 적극적으로 운용하고자 하는 경우인데, 회사와 계약을 맺고 있지 않다면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이번에도 수익률 개선에 큰 효과가 없으면 그다음은 국민연금공단(NPS)의 퇴직연금 시장 진출이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현재 정부와 여당은 국민연금공단을 운용기관으로 참여시키는 '기금형 퇴직연금' 제도의 도입을 논의하고 있다. 가입자의 선택지를 늘려 운용기관 사이의 경쟁을 활성화하고 물가상승률보다도 낮은 평균 수익률을 끌어올린다는 목표다. 금융권은 한목소리로 반대하는 분위기다.
100세 시대가 도래한 만큼 은퇴 후 연금으로 먹고사는 '연금 백만장자'가 절실한 상황이다. 400조 원에 이르는 퇴직연금의 수익률이 연 2%밖에 되지 않는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정부가 전방위로 노력하고 있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다. 그러나 제도가 도입될 때마다 아쉬운 점은 전문가와 업계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하는 것이 아닌 당장의 성과에 집중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