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판박이’처럼 똑같은 IPO 중간수수료…“담합 의심”

입력 2024-10-0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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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 주관사 6곳, 수수료 가격·거래조건 동일
업계 “실무진 간 정보공유…동향 파악 차원”
법조계 “증권사가 부주의…담합 여지 충분”
이정문 의원 “IPO 개선안 취지 다시 살펴야”

▲그래픽=김소영 기자 sue@

8월부터 시작된 국내 증권사들의 기업공개(IPO) 중간수수료가 회사별로 사실상 동일하게 책정된 것으로 나타났다. 업계는 기준 설정을 위해 업무 담당자끼리 타사 동향을 참고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결과적으로 이런 ‘판박이’ 가격 구조는 담합으로 의심받을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6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이정문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금융투자협회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대표 주관사 6곳(미래에셋·한국투자·삼성·NH투자·KB·하나증권)은 8월부터 지난달까지 체결한 IPO 신규계약서에 똑같은 중간수수료 금액을 적용했다. 중간수수료란 IPO가 최종 완료되지 않더라도 발행사(기업)가 증권사에 내야하는 수수료로 8월부터 도입됐다.

이들은 상장예비심사 신청 전에 계약이 해지되는 경우 중간수수료로 1000만 원을, 상장예비심사 신청 이후 해지되는 경우 5000만 원으로 책정했다. 미래에셋증권과 KB증권은 여기서 한 단계를 더 추가했다. 이 두 증권사는 금융위원회에 증권신고서를 제출한 이후 계약을 해지할 때는 중간수수료를 7000만 원까지 받는다. 즉 구조는 △상장예비심사 신청 전 계약 종료 시 1000만 원 △상장예심 신청 후 5000만 원 △증권신고서 제출 후 7000만 원(미래에셋·KB증권) 등 2~3단계로 구성되는데, 거래 조건과 금액이 ‘판박이’처럼 닮아있는 셈이다.

업계에서는 공식 가이드라인 없이 기준을 만들다 보니 동향을 파악할 겸 정보를 나누고 참고했다고 설명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관례처럼 업무 담당자들끼리 동향을 나누는 단체채팅방 등이 있는데, 수수료 시행 전 서로 정보를 공유한 것으로 안다”며 “수수료 도입 여부나 내용에 따라 고객 경쟁에서 밀릴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법조계에서는 이런 수수료 구조가 공정거래법상 부당공동행위(담합)로 볼 수 있다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성희활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시장에 가격이 형성되기 전 사업자끼리 정보를 공유한 것은 증권사의 태도 부주의”라며 “비슷한 시기에 동일한 가격이 형성된 것은 담합에 해당할 수 있고 공정거래위원회도 조치에 들어갈 수 있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국내 대형 로펌 소속 변호사는 “수수료를 처음 설정하는 시점에 정보를 나눴고 결과적으로 거래 조건과 가격이 똑같다면 담합이 아닐 이유가 없다”며 “가격을 따라갈지까지 대화 기록이 남아있다면 가장 핵심 증거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공정한 경쟁이 되지 않아 고객사들만 손해”라고 덧붙였다.

특히 타 회사 업무 담당자끼리의 단체대화방에서 가격이나 금리 등 구체적인 정보 공유가 이뤄지면 담합의 증거가 될 수 있다. 공정위는 지난해 7월부터 18개 은행·증권사를 대상으로 국고채 금리 담합 의혹을 조사 중인데, 이들이 입찰 전 메신저로 금리를 논의한 내용을 핵심 증거로 보고 있다.

이정문 의원은 “금융감독원이 IPO 개선 방안을 내놓았을 때부터 시장 문제를 해결할 핵심이 빠졌다는 지적이 계속돼 왔다”며 “담합 행위가 우려된다며 당국이나 협회에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도 제공하지 않았는데, 결국 이런 가격 구조가 나온 것은 당초 주관사의 독립성을 제고한다는 개선 방안 취지가 잘 반영됐는지 살펴봐야 할 필요가 있다는 방증”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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